ADVERTISEMENT

"나의 죽음을 헛되이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말 서울 도심은 다시 나타난 화염병으로 어수선했다.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3만5천여명의 시위대는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 참석자들이다.

1970년 전태일씨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날이 바로 오늘 (11월13일)이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 앳된 얼굴로 미래의 꿈과 희망을 얘기해야 할 나이에 그는 평화시장 앞길에서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성냥불을 그었다.

60~70년대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성장이 최대의 과제였고, 유일한 목표였다. 덕분에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이적인 고도성장과 수출신화가 있기까지 근로자들이 치른 희생은 컸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속체 안녕하십니까. 각하깨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삼선계현에 관하여 저들이 아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깨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어 은미합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10~12시간으로 단축하시고 일요일마다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

가난 탓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전태일이 69년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 내용이다.

당시 전태일과 함께 일하던 소위 '시다'들은 하루 14시간 노동에 일당 50원을 받고 있었다. 커피한잔에 50원하던 시절이다. 그들은 커피 한잔 값을 벌기위해 온종일 먼지구덩이 다락방에서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타이밍약을 먹으며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야했다.

요즘 노동계는 잇단 분신과 시위로 심상찮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저마다 할말은 많다. 하지만 전태일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삶'은 분명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할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