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시국」 겉도는 정치권/각당내서도 자성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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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방만 되풀이… 의원들 수뇌부에 화살/재야서 국회방문 수습책마련 촉구까지
「치사정국」의 격랑에 정치권이 겉돌고 있어 자성의 소리가 높다.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이어 잇따른 대학생분신으로 시국불안이 지속되고 있으나 정치권이 본질문제에 접근하지 못한채 상호비방이나 하면서 속수무책의 무기력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수뇌부를 비판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자당은 재발방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일부 당직자들은 정부측보다 후퇴한 경찰사기앙양책이나 거론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민당의 김대중총재는 『안정과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투쟁』을 주장하고 있으나 날마다 입장을 달리하는 모습이어서 지도부의 속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민당은 『이 사건이 공안통치의 필연적 결과』(박상천 대변인)라고 정부와 민자당을 비난하고,민자당은 『이 사건에 편승한 신민당이 정략적 선동을 일삼고 있다』(박희태 대변인)고 질책하고 있다.
강군사건이 난지 8일이 지났지만 정치권은 사건초기처럼 피로한 공방만을 되풀이하자 급기야 재야로부터 조롱까지 당했다.
3일 낮 계훈제·백기완·강희남씨등 재야의 강군 대책회의관계자 5명이 국회를 찾아와 박준규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면서 『시국이 긴박하게 돌아가는데도 국회가 아무일도 하지 못해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이유를 밝혔다.
재야의 방문을 제도권정당에 대한 측면 공세라고 치부하면서도 『오죽 얕잡아 보였으면 국회를 찾아왔겠느냐』(김정길 민주의원)는게 여야의원 상당수의 솔직한 고백이다.
의원들은 내심 「치사정국」수습을 주도하지 못할 경우 「수서」·물가등 민생문제로 악화된 정치불신이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은 여야가 서로 헐뜯을 때가 아니다.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정치권이 공멸한다』(김종완·신민),『정치권의 설땅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강삼재·민자)고 고민하고 있으나 막상 시국수습의 대책을 논의하는 단계에 가면 시각차만 드러낼 뿐이다.
문제의 사복체포조(백골단)해체와 관련,민자당은 내무장관 경력의 김종호 총무가 사견임을 달고 폐지를 언급할 정도였으나 정부측과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각목·화염병시위가 계속되는한 사복체포조를 해체할 수 없다』(나웅배 정책의장)는 쪽으로 밀렸다.
그러나 사복체포조해체 주장은 민자당내에서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경찰대교수 출신인 백남치의원은 『공인의식이 없는 전경이란 한시적 수단으로 시국치안을 다루는데는 한계가 드러난만큼 단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3역출신 한 중진은 『경찰이 「강한 모습」을 보여선 안되며 백골단도 그런 차원에서 해체문제를 과감히 검토해야 한다』며 『최루탄을쓰지 말고 화염병에 경찰이 밀리면 밀리는 모습을 시민에게 보여줘 협조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병태의원도 『사회속에 내놓고 시민거부·사회제재로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개선책이 당지도부에는 전혀 먹히지 못한채 논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신민당이 내놓은 전투경찰대설치법 개정안은 민자당과 다른 차원에서 당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법은 전경의 시위진압 동원규정을 삭제하면서 교통단속·방범활동에 나서는 의경까지도 폐지해 대여공세적 측면을 너무 부각시켰다는 자체비판도 있다.
현재로선 여야의 시국수습에 대한 시각차는 해소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져 있다.
민자당 한 중진의원은 『강군사건이 6·10항쟁같은 유사한 사태로 발전될 소지는 분명히 없으나 여기에 편승해 사태수습을 도모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라고 비판하고 있으며,익명을 요구한 서울출신 한 신민당의원은 『김대중총재가 대 국민 유연,대 재야 강경의 양쪽 모두에서 평판을 얻으려 하지 말고 이번만큼은 확실히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두의원 모두 자신들의 지도부가 과감한 발상전환을 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하지 않고 있는 눈치다.
민자당의 오유방의원은 『강군사건과 잇따른 대학생분신이 국민에게 준 충격과 심리적 좌절감에 정치권이 좀더 진지해야 한다』며 『기성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사태확산의 본질』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김대중총재의 핵심측근 김종완의원은 『여야 지도자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민주당의 김정길의원은 『젊은 의원들끼리 당적에 관계없이 모여 흉금을 털어놓고 정치권의 해결방안을 내놓자』고 제안하고 있다.
강군사건은 13대국회·정치권의 시국수습능력에 대한 마지막 시험대라는데 여야의원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들은 치안당국과 운동권 그 어느쪽도 설득할 공약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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