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좋아 늙을 수가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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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작품 좀 봐줘요. 지금 막 완성한 동시인데 좀 싱겁지 않아요? 그런 대로 괜찮아요? 눈에 거슬리는 구절은 없구요?』
새싹회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에게 동시 한편을 막 완성시킨 윤석중 선생은 작품을 내밀며 평해 줄 것을 요청했다.
1천여 편의 동요를 지으며 평생 어린이와 함께 살아온 아동문학 및 어린이 운동의 산 증인 윤석중씨(81).「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의『어린이날 노래』하며「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의『졸업식 노래』등 어린 시절 울며 웃으며 부른 그 숱한 노래를 지어 준 노대가의 작품을 기자가 감히 어떻게 평할 수 있으랴 만 자꾸 봐 달라고 조르는 그는 바로「팔순의 어린이」였다.
『80을 넘기고도 한두 살씩 나이는 더 먹어 가겠지만 나는 늙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그 아이들에 맞는 건강한 노래를 지어 주고픈 마음, 그 마음이 나를 건강한 어린이로 남게 합니다.』
팔순을 넘기고도 오전8시 대우 빌딩에 있는 새싹회 사무실로 출근, 오후5시까지 바쁜 업무와 시작을 할 수 있는 건강은 바로「항상 어린이를 생각하며 어린이로 살고 싶은 마음」에서 왔다 한다.
1956년 아동 문화 향상과 복지를 위해「새싹회」를 창립, 줄곧 회장을 맡고 있는 윤씨는 창립 당시나 지금이나 새싹회에서 펼치고 있는 사업으로 바쁘다.
연례 행사인「전국 어린이 건강 글짓기 대회」「세종 글짓기 대회」「한글날 글 잔치」등 전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백일장 관계로 해마다 전국을 두루 순회하고 있으며 해외 교포 2세들을 위해 마련한「해외 새싹 글짓기」때문에 미국 등지의 해외에도 자주 나간다.
13세 때 자기가 부를 노래를 스스로 지은 노래가『신 소년』이란 잡지에 입선되며 시작된 윤씨의「어린이를 위한 어린 삶」은 70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변함없이 분주하다.
『어린 시절 우리들이 부를 노래가 없었어요. 보통학교 시절「하루(춘)」라는 일본 창가를 서툰 발음으로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다 보니 갑자기 역정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8세 때 파고다공원 근처에 있는 외가에서 들은 붕붕붕붕 벌떼 소리 같은 외침,「대한 독립 만세」가 귓전을 맴돌기 시작하더군요. 그렇다, 뜻도 모르는 일본 창가를 부를 것이 아니라 내가 봄 노래를 지어 부르자고 해「봄」을 지었는데 그게 제꺽「신 소년」지에 뽑힌 거예요. 이듬해인 1925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 등 아동문학 현상모집에 계속 당선돼「소년 문사」대접을 받기 시작했지요.』
나라 잃고 모국어마저 잃어 버린 어린이로서의 슬픔 혹은 울분이 일찍부터 자신을 아동문학의 길로, 민족운동으로서의 어린이 운동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고 윤씨는 말한다.
『백목련 봄맞이 꽃/하도 급해서/잎도 채 나기 전에/꽃이 피었네.』잎도 없이 환한 달덩이같이 피어오른 백목련을 이렇게 동시로 지어 놓고 다시 보니 마치 13∼14세 때 너무 일찍 「문사 대접」으로 출세해 버린 자신의 자화상 같다는 윤씨의 말에는 그러나 나라도, 돌봐 줄 어른도 없던 일제하 아동문학 초창기 기댈 데 없는 슬픈 동심이 짙게 배어 있다.
『그때 비하면 지금 어린이들은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해 보이지요.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고, 사랑도 더할 나위 없이 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겉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예요. 어른들과 똑같은 것을 가질 만큼 갖고 똑같은 문화를 향수하게 해 자신의 분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뤄 줄 대리인으로 키우는 것이 문제예요.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점잖은 애어른들이에요.』
물질과 사랑의 과잉 속에 요즘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움을 잃어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특히 올바른 아동 문화가 없어 어른 문화에 동화돼 가는 어린이들이 차라리 가엾다고 한다. 20여년 전 강원도 지역 어린이 백일장에서『밤마다 밤마다 잠도 못잤는데/어쩌면 포동포동 살이 쪘을까/날마다 날마다 햇볕도 못 쬤는데/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라며 보름달에 대해 쓴 동시를 보고 뛸 듯이 기뻐 잠도 못 이뤘다는 노 시인은 아직도 어린이들로부터 그런 순수한 동심이 우러나올지 의심한다.
학교에서는 점수 따기 공부에 급급하고, 집이나 거리에서는 일본판 폭력 만화나 소설, 우주 악당이나 쳐부수는 TV나 전자 오락기 화면 앞에서 썩어 들어가는 동심을 살리기 위해 아동 정서를 가꿀 수 있는 아동문학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가장 아끼는 작품, 아니면 대표작이 뭐냐는 물음에『앞으로 대표작을 써야지요. 지금까지 쓴 작품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작품을요』하고 답하는 윤씨는 영원한 습작기에 있는 영원한 어린이다. 한번도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키운 3남2녀가 자랑스럽다. 6년 전 금혼식을 올린 부인 박용실씨(77)와 조용히 다정하게 지낸다.
글 이경철 기자 사진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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