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 관계변화 시사/이붕총리 평양행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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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적 성격 최소화에 주력/한반도문제 중립입장 추구
맹방관계이던 중국과 북한의 위상이 일반적인 국가대 국가의 수준으로 격하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엄격히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국제주의에 입각,당대 당이라는 특수관계로 양국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해 왔었다.
최근 북경을 방문했던 대만의 한 소식통은 3일 중국 국무원 총리 리펑(이붕)이 연례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당총서기를 대신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또 당초 이붕 총리의 방북일정이 정치적 의미를 최소화하는 뜻에서 토요일인 4일로 잡혔으나 북한측의 이의제기로 최종적으로 주말을 피한 3일로 조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총리 연형묵의 방중에 대한 답방으로 당총서기 대신 이붕 총리가 평양을 가는 것에 대해서까지 북한이 반발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 북경에서 접촉한 중국관리들이 이붕 총리가 북한방문동안 예상되는 현안들에 대해 어떠한 적극적인 태도도 표명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반면 북한이 한국의 유엔 가입신청에 대해 중국측의 거부권행사를 요구해올 경우 『한반도문제는 남북한간의 직접적인 대화에 의해 풀어가야 한다』는 자세를 북한에도 적용함으로써 중국의 중립적 자세를 북한에 인식시키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붕 총리의 이번 방북은 몇가지 현안에 관해 북한에 압력이나 이해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문자체가 당총서기를 대신하는 중국의 대북 관계변화를 알리는 것인 동시에 지금까지 중국이 일관해 왔던 개방·개혁 노선과 한반도에서의 현상인정을 재확인하는 연장선에 머무를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80년대 이후 개방·개혁노선을 실행해오면서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김정일·연형묵·김영남 등 고위층은 물론 북한의 군·경제 및 행정실무자들을 심수·주해·천진 등 경제개방지구를 방문토록 주선,사회주의 체제하의 개혁의 필요와 장점을 북한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왔다.
최근 또다른 한 중국 전문가는 지난해 9월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과 북한주석 김일성과의 심양회담에서 중국이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김일성이 앞으로 「5년간의 준비시간」을 요청했던 사실을 밝힘으로써 중·북한관계의 변화를 뒷받침했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이 한국과의 수교를 앞당기고 있는데 충격을 받고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등소평에게 북경을 방문할 뜻을 전했으나 거절당했으며,등은 최소한의 성의표시로 심양에서의 회담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 회담에서 김일성은 북한이 개방·개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기간」이 필요하다며 그 이전에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요구했으나 등소평은 아무런 의사표시도 하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중국의 입장은 심양회담 직후 유엔총회에 참석중이던 첸치천(전기침) 외교부장의 『중국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인접국가와의 관계를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는 표명을 통해 우회적으로 북한에 전달됐었다.
전기침은 강택민과 이붕의 이번 방문일정이 발표된 직후에도 대외관계에 있어 자주·평등·평화·호혜 등 사회주의 노선이나 체제에 한정되지 않는 「5개 원칙」을 준수할 것이라고 재천명함으로써 중국이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발전을 모색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83년 9월 소련이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통해 대외개방을 표명하고 한국과의 국교정상화에 착수했을 무렵 소련과의 고위접촉을 통해 한 소 수교에 북한이 대응하기 위한 「3년 유예기간」을 요청,확인받았었다. 그러나 소련이 이를 지키지 않음에 따라 북한이 소련을 「배신자」로 규정하며 반발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의 대한 관계정상화를 저지할만한 유효한 방도를 갖지 못한채 자체개혁·개방과 주변관계변화 사이에서 시간에 쫓기고 있으며 중국은 이붕의 방북이후 대한 수교작업을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이 전문가는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이미 한 중 국교정상화는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만큼 오히려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불필요한 북한의 고립이나 반발을 줄이면서 실무적·단계적 방식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한 중 관계의 발전으로 오는 7월말까지 인천∼천진간에 쾌속페리가 취항하고,연말까지 서울∼천진,서울∼상해간에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가 취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같은 실무관계의 진전으로 중국과 미국관계의 급격한 악화사태가 없는한 오는 9월 한국의 유엔 가입실현에 이어 내년말까지 한 중 국교수립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이 전문가는 전망했다.<대북=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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