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교황청 유럽통합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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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로마 교황청이 사회 민주주의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자본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지적하면서「가톨릭에 의한 동·서유럽의 통합」이라는 구상을 세워가고 있다.
최근 동구·소련의 급변혁과 서구의 유럽통합 움직임과 맞물려 가톨릭은 유럽에서 부흥의 전기를 마련코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금세기 가장 활동적이며 국제정치 감각이 뛰어난 교황으로 평가되는 요한바오로 2세는 91년을 「사회교시의 해」로 선포하고 오는 10월 로마에서 동·서유럽 전역의 주교들을 소환,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바티칸과 요한바오로 2세는 또 5월중 동구 변혁과 관련한 사회강령의 칙서를 천주교들에게 내릴 계획이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교시로 각 국 정부에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이며 81, 87년에 이어 세번째가 된다.
이는 마르크시즘과 혁명적 사회주의를 공격한 레오 13세의 칙서 출판 1백주년에 즈음해 내려지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티칸은 또 이론적 뒷받침을 위해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의 칙서연구와 함께 일군의 세계경제학자들에 의한 세미나도 마련해놓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폴란드 출신인 요한바오로 2세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동구권의 지도자로 간주되고 있다. 소련·동구 사회주의 진영의 지도력이 몰락한 가운데 78년 교황즉위 이래 줄곧 동구에서의 재포교를 강조해온 요한바오로 2세는 노동중요성·분배의 정의 등 사회주의 가치를 줄곧 내세우면서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키워왔다.
또 유난히 제3세계와 저개발국가들을 많이 방문한 교황은 특히 구미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발견되는 물질주의의 폐단을 자주 단죄하고 기독교의 부패를 비난해왔다.
교황은 유럽세계는 이제 동서 양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으며 『교회가 이 둘을 통합해야할 책무가 있다』며 가톨릭에 의한 유럽의 영적인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공산정권이 몰락한 체코를 방문했을 때 『유럽 통합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니다』며 『정치적·경제적 통합노력에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적·도덕적·영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유럽문화의 뿌리인 가톨릭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기 때부터 공산정권의 종교탄압을 겪은 교황은 『동구의 가톨릭 정신은 40년 전체주의적 정치하에서도 면면이 살아왔다』고 강조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지나친 발전이 사람들로 하여금 소유와 즉물성의 노예가 되게 했다』고 말하며 유럽의 새로운 정신과 그를 통한 일치를 모색했다.
서구자본주의가 제3세계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의 성향을 띤다는 점을 지적한 87년의 칙서 발표이후 바티칸은 서구에 비해 동구에서 정신적 지도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해왔다.
교황은 『자본이익만을 추구하다 저지르는 개인적 죄과가 전체주의적 공산정권의 권력집중만큼 해악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티칸의 사회민주주의 지향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집단주의를 동시에 배격하는 제3의 대안은 없고 추상적으로 현실해석과 크리스트의 교훈을 가르치는 것에 머무르고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교황이 지난해 멕시코에서 한 대담에서 『적어도 피상적으로 자유자본주의의 승리로 평가되는 동구의 대변혁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말함으로써 동서유럽의 뿌리깊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에 부닥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교황과 바티칸의 노력은 동구에서는 지지를 받고 있다. 유고의 한 교황보좌관은 바티칸의 사회교시에 대해 『소련 지식인·공산당 간부에게도 강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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