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 오감으로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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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칠흑 같은 어둠, 이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빛 하나 없는, 정말 깜깜한 공간. 그곳에 나는 서 있다. 멀미가 난다. 귀가 윙윙거리는 것도 같다. 무력감이 찾아온다. 감은 눈이라면 뜨면 그만이지만 여기서는 속수무책이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전은 시각장애인이 되어보는 기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빛을 완전히 차단한 공간에서 거리를 지나가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시장에서 물건을 구경하는(손으로 만져보는) 행위를 체험한다.

전시장 입구에 서면 열명씩 조를 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시각장애인이 안내를 맡아 길을 인도하고 공간의 느낌을 서로 이야기한다. 참가자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케인)를 바닥에 두드려가며 길을 나선다. 처음 들어가는 자연 방에서 반가운 새소리도 잠시,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며 긴장한다. 이어지는 거리 방에서 소음과 각종 신호음을 들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시장 방에선 파.파인애플.호박 등 난전에 놓인 물품들을 만져본다. 마지막 방인 카페로 들어가면 바에 서서 음료를 주문하고 대화를 나눴다.

40여분간의 특별한 경험을 마친 소감은 어떨까. 강성(40.변호사) 씨는 "처음엔 좀 두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적응이 됐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 있자니 무엇을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지연(35)씨는 "뻥 뚫린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공간의 크기나 모양새를 파악하기 힘들어 감각이 점점 무뎌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행사는 독일의 심리학자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거리를 좁히자는 차원에서 1998년 창안한 이벤트. 해외 18개국 70여개 도시에서 진행됐다. 어둠 속에서 되려 민감해지는 오감을 느낄 수 있고, 비장애인이 잠깐 동안이라도 시각장애인의 위치에서 생활을 해 본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그러나 일상 생활을 재현하기 보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잠시 들렀다 가는 진행방법은 아쉬움을 준다. 입장료 2만원. 3월 11일까지. 02-3444-0239.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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