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사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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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악순환은 원래 경제용어다.
가령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물가가 오르고,물가가 오르면 임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고,이런 상황이 되면 정부는 돈을 마구 찍어내야 한다. 돈이 쏟아져 나오면 물가는 더 오른다. 모든 일이 나쁜 쪽으로만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몇십년을 두고 신물이 나도록 우리가 경험해온 일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악순환의 사슬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의 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멀리 더듬어 볼 것도 없이 요즘 우리 주변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비전이 없는 현실은 학생들에게 시위의 구실을 주며,그 시위를 「원천봉쇄」한다고 경찰이 밀어붙이면 비명이 커지고,시위는 더욱 극렬해진다. 경찰은 드디어 높은 단수의 공격형 진압전술을 동원해 마구잡이로 시위자들을 뒤쫓고,나중엔 감정까지 복바쳐 강경대군의 비극과 같은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권위주의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하나의 타성이자 관행이었다. 결국 그런 악순환은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동안 운동권 학생들의 「운동」은 좀 눅눅해지는 기색이었다. 수자도 많이 줄어들었고,이들의 주장과 색깔도 그전 같지 않았다. 어쩌면 당사자들은 새로운 전략과 활로를 찾지 못해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악수만 두지 않으면 시국은 그럭저럭 가라앉는 쪽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앞으로의 일들이 어떻게 풀릴지 그저 막막한 생각만 든다. 보나마나 길거리엔 다시 화염병이 난무할 것이고,그것을 뒤쫓는 최루탄이 작렬하는 폭음과 숨막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모든 일들이 상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처럼 가슴철렁하는 나날을 살아야 하는가. 악몽의 현실은 언제나 끝이 나는가.
지금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기둥은 자제밖엔 없다. 모두가 한발 물러서는 자제야말로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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