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북방전사」의 사기극/이철호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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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북방바람을 타고 한몫 잡아보려는 엉터리 합작기업들이 무역협회 기자실까지 침투해 말썽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그동안 비밀리에 추진해와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안기부등 북방관련 부서들의 압력이 거셌다』고까지 늘어놓으면서 「북방전사」인양 행세하고 있다.
협회에 공식등록도 하지 않고 변변한 공장조차 없는 기업이 『중국에 1조5천억원 규모의 공단조성 독점권을 따냈다』고 설치고 다닌 한청개발(한국특수베어링이라는 회사의 한 중 합작회사로 주장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저마다 새로이 나타난 또 하나의 「천지무역」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북방지역 통상사절단이 들어와 투자유치 설명회라도 있는 날이면 길게 줄을 서는 중소기업인의 행렬에서 높아진 북방열기와 심각한 해외정보 부재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조차 아직 북방지역의 지사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사실상 대부분의 북방정보는 정부의 손에 집중돼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은 북방진출에 대해서는 국익을 앞세워 아직도 비밀에 부치고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다.
한청개발은 바로 이런 북방정보 편중현상을 교묘히 이용해 한몫 보려는데서 생겨난 셈이다.
이 회사는 무역협회 팩시밀리를 통해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 수 없으나 기자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기까지 했다.
일부 언론에 「한청개발 1조5천억원 규모의 중국공단 조성」이라고 보도된 상황에서 이 사기극에 속아넘어가지 않을 중소기업이 있을까.
회사측은 뒤늦게 사실확인에 나선 취재진들에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저마다 북방개척의 「수훈갑」을 자처해온 관계당국은 사실조사는 커녕 『민간기업의 일이라 모르겠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정작 국익을 앞세우는 북방진출이라면 정부당국은 중소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의심나는 「가짜」의 실상부터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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