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전기 흥청망청 쓰면「제한 송전」|갈수록 심화되는 전력 난…문제점등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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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 여름 전력 사정이 무척 어려울 것 같다. 자칫 전기가 모자라 제한 송전을 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사태도 우려된다. 50, 6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경험했던 제한송전이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선 90년대에 또다시 재연될 우려가 있다. 90년 말 현재 국내 총 발전용량은 2천1백12만6천kw, 여기에서 정기보수를 위해 가동을 중단시킨 발전설비를 제외하면 실제 공급능력은 2천50만9천kw 수준이다. 그러나 올 여름 무더위 때 예상되는 최대 전력수요는 1천9백62만9천kw다. 결국 실제공급 능력에서 최대 전력수요를 뺀 예비전력은 88만kw에 불과, 공급 예비 율이 4∼5%로 떨어질 전망이다. 공급예비 율은 전력을 공급하는데 얼마나 여유가 있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로 15%가 적정수준이다. 따라서 올 여름에는 공급 예비 율이 적정수준의 3분의1로 떨어져 90만∼95만kw짜리 원전 1기라도 예기치 않은 고장을 일으키면 전력이 모자라 결국 제한송전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급 예비 율이 48%를 넘어설 정도로 여유가 있던 전기가 어떻게 이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원인과 대책, 문제점 등을 알아본다.

<원인>
전력도 일반상품과 마찬가지로 공급과 수요에 의해 남고 모자람이 결정된다.
지난 3년간 공급을 담당하는 발전소 설비는 하나도 늘어난 것이 없는데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 결국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88∼90년 3년간의 전력소비 증가율은 평균 13·7%, 특히 90년에는 14·8%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올 들어서도 이같은 증가 추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전력 소비 증가율은 같은 기간 중 평균 GNP(국민총생산) 성장률 9·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는 전력소비가 공장 가동과 같은 생산부문보다 비생산 부문에 더 많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정에서 에어컨을 쓴다든 가, 업무용 빌딩이나 유흥 환락가를 밝히는데 전력낭비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부문별 전력소비 증가율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88∼90년 중 산업용 전력소비는 평균 11·5% 증가한 반면 업무용은 22·7%, 주택용은 15·9%씩 늘어났다.
90년 한해만 보더라도 산업용은 12· 9%인데 비해 업무용은 20·0%, 주택용은 17·0%로 비생산부문이 전력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국내 경기를 이끌어 왔던 건설경기로 크게 늘어난 빌딩과 주택, 그리고 소득향상과 함께 동시에 늘어난 에어컨 등 내구성 가전제품의 구입 붐이 전력부족의 주범인 셈이다.
특히 가정용 에어컨은 작년까지 총 1백59만9천대가 보급, 한여름 에어컨에 들어간 전력이 전체수요의 21·6%인 3백73만2천kw나 됐다.
1조5천억 원의 돈을 들여 6∼7년 걸러 짓는 원전 1기의 전력생산량이 90만∼95만kw이므로 결국 한여름 에어컨이 원전 4기의 생산 분을 몽땅 끌어다 쓴 셈이다.
에어컨은 올해도 60만대 이상의 신규 판매가 예상돼 전기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
전력부족을 없애려면 발전소를 많이 지어 공급을 늘리거나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발전소를 짓는데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걸러 전기가 모자란다고 해서 당장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남아도는 전기 때문에 발전소 건설을 게을리 한 것이 오늘날 공급부족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오랫동안 놀려 놓은 발전소를 다시 가동시키거나 발전소 정가 보수기간을 줄여 가동기간을 늘리는 등 극히 제한된 수단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1백20만5천kw에 불과해 올해 예상되는 최대전력 수요 증가폭 2백37만7천kw에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이처럼 공급확대가 어렵다 보니 결국 소비를 줄여 전력부족 현상을 막는 길밖에 없다.
이번에 전기 요금을 조정하면서 주택용 누진체계를 4단계에서 5단계로 늘려 에어컨 사용 등으로 3백kw이상 쓰는 가정에 대해 요금을 대폭 올린 것도 소비를 줄여 보자는 고육지책의 하나다.
또 에어컨 판매를 줄이기 위해 할부판매 금지와 특별소비세 중과가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형 빌딩에 들어가는 냉방 전력수요를 줄일 수 있도록 가스냉방기와 수축 열 냉방 시스템의 설치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특히 얼음이 녹을 때 생기는 냉기를 이용해 냉방을 하는 빙축열 냉방 시스템은 kw당 최고 20만원, 건당 최고 5천5백 만원까지 시설비를 싼 이자로 빌려주는 금융·세제지원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동력자원부와 한전은 이같은 방법으로 1백4만kw의 전력을 절약, 공급 예비 율이 7·0%에 이른다면 제한 송전과 같은 비상사태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전기를 아껴 쓰겠다는 마음자세다.
전기절약을 생활화하지 않을 경우 언제 어느 때 전력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공급규모를 넘어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력자원부와 한전은 올 여름에 전기 아껴 쓰기 범국민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전력사정의 어려움은 93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93년까지는 완공될 발전소가 별로 없어 공급부족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력자원부 계산으로도 93년 전력공급 능력은 2천4백59만kw로 여름철 최대수요 2천2백78만kw에 비하면 공급 예비 율이 7·9%로 여전히 빠듯하다.
이 때문에 동력자원부는 장기전원 수급 계획을 고쳐 빠른 시일 내에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앞으로 10년 뒤인 2001년에는 전력공급능력을 현재의 2배가 넘는 4천6백77만4천kw로 가져간다는 계획아래 ▲원자력 9개 ▲유연 탄 24개 ▲무연탄 1개 ▲석유 2개 ▲LNG 8개 ▲수력 11개 등 모두 55개의 발전소를 새로 짓기로 했다.
동력자원부는 이들 발전소가 완공되면 2001년의 공급 예비 율은 23%에 이를 것으로 내다 <문제점>
발전소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우선 96년까지만 해도 22조3천억 원이 필요, 한전이 아무리 장사를 잘해 건설자금을 메운다 해도 16조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만 해도 건설 투자비 3조3천억 원 가운데 2조원의 재원 염 출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내년 이후의 건설비 조달방안은 여건의 변화를 보아 가며 추후 검토키로 하고 우선 올해 필요한 자금은 재정자금에서 10억 원을 얻고 ▲산은 시설자금 2천억 원 ▲특별 외화대출 7천8백65억 원 ▲수출입 은행 자금 1천2백16억 원 등 은행에서 1조1천81억 원을 빌려쓰는 한편 5천억 원의 전력 채 발행과 하절기 전력요금 조정에서 추가로 생기는 2천1백억 원 등으로 메우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특별외화 대출은 4천억 원만 확정됐을 뿐 나머지 3천8백65억 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간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며 전력 채 발행도 증시침체와 높은 이자(연리 19%)때문에 계획을 못 세우고 있다.
한전은 부족자금을 메우기 위해 재정에서 2천억∼3천억 원을 지원해 주고 이번 요금 조정과는 별도로 전력요금 인상을 관계당국에 건의하고 있으나 재정 긴축과 물가안정이라는 명분에 막혀 있는 상태다.
특히 전력요금 인상은 최근의 유가인하 추세와 물가불안 심리로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발전소는 안전성이나 환경보전 측면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어 입지확보에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입지 처를 신설, 발전소 세울 땅을 잡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나 충남 태 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주민 반발에 부닥치고 말았다.
더욱이 원전 후보 지는 안면도 사건 이후 입지조사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 부족은 심각해지고 투자재원과 입지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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