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북한 가서라도 남편 꼭 만날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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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홍옥근씨

"올해는 꿈에도 그리던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새해를 맞은 독일 할머니 레나테 홍(69)의 마음은 크게 부풀어 있었다. 1961년 북한 당국의 강제 소환으로 함흥으로 돌아간 남편 홍옥근(1934년생)씨에 관한 소식을 올해는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편 소식을 듣고 다시 편지를 쓴다면 뭐라고 쓸까요… 먼저 두 아들이 잘 자라줬다는 얘기를 전하고, 남편의 건강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소녀처럼 들뜬 모습의 그는 남편이 살아 있어 다시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무력감에 빠져 있던 홍 할머니에게 지난해 말은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생이별한 남편을 찾는다는 애절한 사연이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독일 언론에도 크게 소개됐던 것이다. 그는 "우리 가족의 가슴 아픈 얘기를 취재해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킨 중앙일보에 감사한다"며 "덕분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격려의 전화와 편지를 받았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새해 인사를 건넸다.

1961년 북한으로 강제 소환된 남편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레나테 홍 할머니가 큰아들 페터 현철(左), 작은아들 우베와 함께 “중앙일보 덕분에 새해에는 꼭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현재 독일 안팎에서 홍 할머니 부부 상봉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독일 적십자사 루돌프 자이터스 총재는 지난해 12월 7일 대한적십자사에 보낸 편지를 통해 홍 할머니의 남편 상봉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독일적십자사 직원 두 명을 이달 말 평양에 파견, 북한적십자사 관계자들과 홍옥근씨를 찾는 방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독일 외무부도 나섰다. 한 당국자는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과 접촉해 홍 할머니의 남편을 찾는 데 협조해 달라는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주재 홍창일 북한 대사가 홍 할머니의 청원편지를 접수해 평양에 전달했음을 확인해 주었다"고 소개했다. 얼마전 베를린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차원에서도 홍 할머니를 돕는 방법을 찾아 보겠다"고 약속했다.

레나테 홍은 46년을 수절하며 남편을 기다려왔다. 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던 해 북한은 동독 유학생들의 서독 이탈을 우려해 모두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홍 할머니는 10개월 된 큰아들이 있었으며, 둘째를 임신한 지 다섯 달 된 무거운 몸으로 남편을 따라갈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해야만 했다. 남편이 떠난 뒤 동독 정부와 북한 대사관에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수없이 하소연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는 일이 힘에 겨울수록 남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세상도 많이 바뀌고… 나도 남편도 이제는 늙은이가 됐다"며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면서 남편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커졌다. 그러다 자식들에게 "직접 북한에 가서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속만 태우고 있는 그의 애절한 사연을 본지가 취재해 지난해 11월 14일 처음 보도했다.

◆JMnet(중앙 미디어 네트워크)도 취재=중앙일보의 유선방송 자회사인 중앙방송의 Q채널도 홍 할머니의 사연을 독일 현지에서 취재해 18일 오후 10시 방영할 예정이다. 재방송은 19일 오후 3시다. JMnet 홈페이지인 조인스닷컴(joins.com)에서도 일부 내용을 지금 볼 수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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