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용훈 대법원장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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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받은 수임료 가운데 5000만원의 세무신고를 몇 년간 누락했다가 그저께 세금 등 2700여만원을 냈다고 한다. 그는 탈세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세무사의 실수일 뿐 몰랐다고 해명했다. 변호사가 세무신고할 때는 수임사건 목록.번호를 제출하기 때문에 선뜻 수긍하기 힘들지만, 사법부 수장에 대한 마녀사냥식 매도는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은 단순 실수인지 고의인지, 진실 확인이 급선무다.

그럼에도 파문이 확산된 데는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두 달 전 탈세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는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10원이라도 탈세했으면 그만두겠다"고 강변했다. 그러곤 가만히 있다가, 언론이 탈세 확인 취재를 하자 허겁지겁 세금을 냈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사안인 데도 사실 확인 없이 허장성세(虛張聲勢)부터 부리다가, 언론이 사실 확인을 하니까 해명하는 것이 과연 법조계 수장의 올바른 행동인지 의심스럽다.

대법원장의 지도력은 이미 상당히 추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은 그의 포퓰리즘적인 발언에서 비롯됐다.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하라"고 말해 정권 코드 맞추기란 비판을 받았다. "검사가 작성한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변호사 자료 대부분은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서" 등의 발언으로 검찰.변호사들과 충돌했다. 대한변호사회는 지난해 대법원장 사퇴까지 요구했다.

이런 판에 그의 도덕성에도 큰 흠집이 생기게 됐다. 그는 어느 대법원장보다 강도 높게 판사의 청렴.도덕성을 강조하고, 전관예우를 비판했다. 그런데 그는 2000년부터 5년여간의 변호사 시절 397건의 사건을 맡아 6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70%는 대법원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최상급 전관예우가 아닌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그는 탈세 의혹에 대해 신앙인임을 내세워 그것을 부인했다. 구차한 변명이나 인기영합적인 발언은 그만두고, 진실을 밝혀 국민을 납득시키고 진중하게 사법부를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