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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 정치생명의 분수령/소 공산당중앙위 전체회의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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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보수파,위기 해결능력 비판/“서기장직 사임발표로 선수” 분석도
한국·일본을 상대로 외교무대를 펼치고 귀국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출국전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렸다. 24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가 열리면 당내 보수파들의 정치공세가 험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의를 계기로 현 소 정치·경제위기에 대한 공산당의 현실인식과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판이 분출될 것이므로 고르바초프의 정치생명에 매우 중대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국가정책을 다루는 중앙위 전체회의의 이번 의제는 2주일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윤곽을 밝혔고 21일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공식 제의한 시위·파업금지를 골자로 한 「반위기 프로그램」과 전체적인 고르바초프의 위기해결 노력에 대한 평가.
고르바초프는 소련 공산당내 강경파들로부터 현재의 정치·경제위기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인민의 지지를 상실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20일과 21일엔 소연방의회인 인민대의원대회내 군 및 공산당 과격파들의 정치집단인 소유즈파가 당서기장직 해임과는 별도로 ▲국가비상사태 선포 ▲대통령의 권한축소 ▲재임중의 업적평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몇몇 외신들은 루키아노프 최고회의 의장 및 리슈코프 전총리 등 공산당내 합리주의자들이 고르바초프의 위기타개 능력에 대한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중앙위 전체총회에서 공산당 보수파들의 맹렬한 정치공세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연8주째 계속되고 있는 광원파업은 이미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직 사임이 자신들의 주요한 요구사항임을 강조하고 있고,급진개혁파들은 고르바초프에게 진정으로 개혁추진의사가 있다면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그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께까지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의 공산당 결별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을 우려,소극적으로나마 그의 개혁정책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악화된 경제상황,급격한 인플레 및 분리파들의 사회적 소요 등으로 안정희구세력이 늘어나고 국민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당과 정부의 장악을 통한 정책결정에 있어서의 영향력 확대와 개혁정책에 대한 반격을 도모해 왔다.
또한 「국민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개혁시책을 펴는 정부와 공산당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주 우크라이나의 소요사태 와중에 개최된 키예프시 당대회에서의 공개성명과 레닌그라드시 공산당,러시아공산당내 온건파들 및 시베리아의 튜멘지구당 등의 현 상황에 대한 입장표명을 통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관측통들은 이와 같은 움직임은 보수세력 스스로 최근 인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개혁정책과 고르바초프로부터 결별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헌법 6조의 폐기를 통해 지도적 지위를 박탈당한 공산당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정부와의 완전한 결별을 통한 독자적 존립만이 정치세력으로 영향력을 복귀시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3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반 폴로스코프 러시아공산당 제1서기와 빅토르 알크스니스 소유즈파 리더가 『소련 공산당은 오랜 역사적 과정과 사회적 투쟁의 소산으로 특정인에 의해 지도되는 것이 아니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정세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월6일 모스크바호텔 847호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던 알크스니스는 『소련 공산당내에는 고르바초프를 대신할 많은 인물들이 있으며 고르바초프도 공산당내에서 성장한 인물이란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고르바초프를 대신할 인물들이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뿐』이라고 밝혀 소유즈파가 공산당 서기장직 및 대통령직 해임압력을 가속화할 것임을 밝혔다.
물론 고르바초프를 반대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이와 같이 크다 하더라도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중앙위내에 『어떤 도전도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이번 공산당중앙위 총회를 앞두고 소련 분석가들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 스스로 서기장직 사임을 발표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즉 급진개혁파나 보수강경파들의 사임요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의 위기타개는 분리파 공화국의 민족주의세력 및 러시아공화국 등 민주야당세력과의 「권력공유」나 「원탁협상」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고르바초프가 이미 깨닫고 있으며 지금이 그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럴 경우 특정의 정치세력이나 정파를 초월한 최고지도자의 권위확보를 위해서는 이미 지도적 위치를 상실한 쇠락하는 공산당의 서기장직을 떠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고르바초프와 협력가능성을 시사하는 옐친캠프의 움직임과 지난 20일부터 전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전 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러시아공화국최고회의 부의장 루슬란 하스블라토프,모스크바시장 가브릴 포포프 등이 참여한 위기타개를 위한 범정파 원로 원탁회의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 이와 같은 상황을 분석해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 유포를 보수세력의 격렬한 반발을 무마하고 연방위원회 등 집단적 기구체를 통한 연립정부 구성을 관철하려는 고르바초프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항상 정치적 모순의 극대화와 격렬한 논쟁으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고조될 때 극적인 반전을 이룩해온 고르바초프가 이번 당중앙위 총회에서 어떤 「깜짝쇼」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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