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내기 싫으면 말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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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파병 논란에 서운함과 실망감을 표시했다. 한국과 일본 방문을 앞두고 10일 워싱턴 외신기자 클럽에서 열린 한.일 특파원단 합동 기자회견에서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풀어서 얘기하면 '파병을 하겠다고 했으면 스스로 책임지고 하면 되지 무슨 뒷얘기가 그리 많으냐'는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은 "미국은 (다른 나라가)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또 "파병은 어려운 결정이고 국민과 헌법과 의회 앞에 나서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군인들이 계속 살해되고 부상당하는 이라크에 파병하려면 육체적인 용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등 한국 대표단이 지난주 워싱턴을 다녀간 뒤 "한국은 3천명 파병을 원했는데 미국이 반대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는 데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반면 럼즈펠드 장관은 일본에 대해선 감사와 우정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 몇년간 일본은 국제안보면에서 그들 군대(자위대)의 역할을 발전시켜 왔다"면서 "미국과 일본은 21세기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동맹을 강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는 주한미군 감축 의사를 거듭 분명히 했지만 "아직 인력.비행기.군함.탱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를 결정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에서 보듯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해 갈수록 서운해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자칫하면 한국은 파병하고도 생색을 못내고, 그에 대한 정치.경제적 대가도 얻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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