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의 괴성, 하늘을 찔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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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한항공 보비가 삼성화재 신진식의 블로킹 위에서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현대캐피탈-삼성화재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린 게 가장 기쁘다."

문용관 감독의 말처럼 대한항공은 올 시즌 프로배구 반란군의 주역이 됐다.

'기적의 팀' '돌풍의 팀'이란 말로는 대한항공의 대분전을 묘사하기 불편했다.

대한항공은 3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힐스테이트 V-리그 남자부에서 '삼바괴물'보비(37점)를 앞세워 4연승을 질주하던 삼성화재를 3-2으로 주저앉혔다. 2000년 1월 9일 수퍼리그에서 삼성화재를 3-2로 물리친 뒤 7년 만에 맛보는 감격의 승리였다. 2005년 프로 출범 후엔 11연패를 당하던 터였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31일 현대캐피탈을 잡은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3일 만에 삼성화재마저 풀세트 접전 끝에 무너뜨리며 고공 비행을 계속했다. 2게임 연속 대박 행진이다.

삼성화재와 동률인 4승1패로 1라운드를 마쳤지만 세트 득실률에서 뒤져 2위다.

문용관 감독은 "강팀들을 상대로 한 대한항공의 이번 2연승이 프로배구 활성화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매 게임 최선을 다해 팬들의 성원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초반부터 박빙의 승부였지만 처음 두 세트는 막판 결정력에서 앞선 삼성화재가 가져갔다. 대한항공은 1세트 23-22로 앞섰으나 상대 레안드로(41점)에게 오픈공격과 시간차공격, 서브득점을 잇따라 허용하며 25-27로 세트를 내줬다. 2세트에서도 접전 끝에 21-25로 졌다.

3세트 중반까지도 삼성화재에 밀려 0-3 패배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보비와 신영수(17점), 강동진(11점)을 앞세운 대한항공의 화력은 강했지만 수비 조직력에선 삼성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3세트 들어 대한항공의 저력이 살아났다. 14-19로 뒤지던 대한항공은 강동진의 대각선 강타를 시작으로 내리 5점을 뽑으며 역전 드라마를 써가기 시작했고 24-24 듀스에서 보비의 스파이크와 신영수의 서브득점으로 세트를 따내 경기 흐름을 뒤집었다.

접전 끝에 4세트도 25-23으로 이기며 기세를 올린 대한항공은 5세트 한 점 차 시소게임 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고비 때마다 보비의 타점 높은 강타가 터져 나와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브라질 외인 레안드로는 57.72%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며(보비 44.85%) 삼성화재 공격을 이끌었으나 판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고비 때 몇 차례 실수를 했고, 막판 체력마저 떨어지며 승리의 문 앞에서 멀어져 갔다.

승리의 주역 보비는 "브라질 리그에서 레안드로가 속한 팀과 많이 싸워 봐서 그에게 익숙하다. 다시 맞붙어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보비는 레안드로의 스파이크를 블로킹으로 저지할 때마다 더 크게 괴성을 지르며 기세를 올렸고, 그럴 때마다 레안드로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비를 째려봤다.

인천=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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