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피의자에 진술거부권 권유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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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에 참여할 수 있는 변호인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법원의 첫 결정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배용준 판사는 3일 간첩단 일심회 사건의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가 "정당한 변호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정보원장을 상대로 낸 준항고 사건에서 "국정원장은 장 변호사에 대한 퇴거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현재 일선 수사기관이 활용하는 대검찰청 예규 형식의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 운영지침'에 따르면 변호인은 피의자 신문이 끝난 뒤에야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변호인이 승인없이 신문에 개입할 경우 강제 퇴거시킬 수 있다.

배 판사는 결정문에서 "피의자 신문에 참여하는 변호인은 수사관의 불법적이거나 부적절한 신문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며 "피의자의 요청에 따라 또는 요청이 없더라도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의 행사를 권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국정원 소속의 수사관이 일심회 총책 장민호씨를 상대로 2005년 서울 워커힐 카지노에서 환전을 하게 된 경위를 묻자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또 수사관이 질문을 계속하자 장씨에게 "진술을 거부하라"고 권유해 강제 퇴거당했다는 것이다.

배 판사는 "당시 진술거부권 권유는 정당한 변호권 범위 내의 행위"라며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를 '입회'에 한정시키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피의자가 효과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 지식이 부족한 피의자에게는 헌법상의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부당한 신문 방지를 위해 변호인의 적극적인 조력이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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