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정상 제주회담이 남긴 파장/한반도 평화기류 일단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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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서 유연성 보여야 남북대화 진전/미­일과 우방관계 무시땐 되레 역효과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제주정상회담은 한소관계는 물론 동북아국제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소련이 우호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의하는등 남북한을 둘러싼 미·일·중·소간에 복잡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같은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와 문제점,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반응을 서대숙교수(미 하와이대)와 고병철교수(미 일리노이대교수·서울대 객원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조망해 본다.
□좌담
서대숙(미 하와이대교수)
고병철(미 일리노이대교수)
▲서교수=이번 한소간의 제주정상회담은 소련의 국가원수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고르바초프의 방한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상징성이나 이것이 미칠 파장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사건이죠.
▲고교수=고르바초프의 방한으로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평화정착분위기가 일단 형성됐다는 점이 성과라고 봅니다.
남북간 경쟁체제가 아직 완전히 종식됐다고는 보기 어려운 시점에서 소련국가원수가 북보다 남에 먼저 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정부 입장으로서는 유엔가입·핵사찰문제등에 있어 만족한 답변을 소련으로부터 얻어냈으니 「자축할만한」회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서=소련의 개혁·개방정책으로 남북관계가 과거의 치열한 냉전상태에서는 탈피한 것처럼 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한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생겼다고 봅니다.
▲고=북한의 변화는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때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죠.
「한소수교」라는 충격이 가해지자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소수교에 못지 않은 충격을 북한에 보냈다는 점이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한이 갖는 또다른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서=고르바초프의 방한배경은 한국으로부터의 경제원조확보,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고르바초프가 전격적으로 제의한 우호조약체결문제는 동북아에서의 발언권 강화와 관련,주목됩니다.
▲서=우호조약의 구체적 내용이 밝혀지지 않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우나 문화·학술 등의 차원에서 우호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군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면 그야말로 문제는 복잡해질 것입니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 없고 일본도 나름대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고….
▲고=일본에서 별 성과가 없었는데 따른 대일카드로 그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이 제안을 놓고 한·미·일간에 벌어질 기류도 지켜보면서 말이죠.
만약 군사적인 성격이라면 서교수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서=고르바초프의 방한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이냐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동감입니다. 현재 현안인 핵사찰,대일수교에서 변화를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소련이 갖고 있는 대북한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하다고 봅니다.
북한교역량의 50%를 소련이 차지하고 있고 미그­29등 첨단무기의 부품을 계속 제공받야만 한다는 점등은 북한에는 압박요인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서=소련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 소련을 전적으로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는 「자유주의자」라고 쳐도 소련자체가 「자유주의 국가」는 아닌 것입니다.
소련군인과 북한군인들간에는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르바초프의 국내 입지가 강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고=한소수교로 북한이 대일수교 결심을 했듯이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방한에 따라 대미·일 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대일수교를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 모종의 양보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핵사찰 문제에 있어 협상당사국인 일본은 물론 미소가 완강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어떤 식으로든지 양보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북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접촉을 중요시하고 있지요.
▲서=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북한은 핵사찰과 대일수교는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대일수교가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소련이 압력을 넣는다 하더라도 핵사찰에 대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으로서는 핵사찰문제는 남한에 배치돼 있는 미군 핵과 연계시켜 대응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고르바초프의 방한이 북한에 줄 충격과 함께 한국정부가 유연성을 보인다면 남북관계는 호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에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식에 치중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의 방한이라는 상태에까지 온 마당에서는 무언가 「양보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되면 북한도 「성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게되고,이에 따라 실질적인 차원에서 대화가 이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저는 당분간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리라고 봅니다.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맺자 북한은 소련을 격렬히 비난하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미일의 남북대화압력으로 고위급회담이 열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성과가 있었습니까.
4차 고위급회담을 5월말에 열자고 한국정부가 제의했습니다만 예정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고,설사 열린다해도 별 성과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고=소련이 이번에 한국의 단독유엔가입을 지지했으나 중국은 정경분리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여 그렇게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5월의 중소정상회담을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서=한국정부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중국교섭을 밀고나가면 기권까지는 유도할 수 있겠죠.
그러나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꼭 들어가야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고=고르바초프의 방한으로 남북한을 둘러싼 동북아에 큰 파동이 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로서는 북한을 대할때 외교적 경쟁상대로만 보지 말고 직접 대화를 하면서 남과 공존체제를 유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서=고르바초프의 방한후 우리가 대소관계에서 유의해야할 점이 몇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미일과의 전통적인 협조관계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고르바초프에게 의존,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역풍이 닥쳐올수도 있다는거죠.
김일성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도 안됩니다.
게다가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장래도 단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봅니다.<정리=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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