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중견기업] 비츠로시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지난해 9월 한 코스닥 상장기업의 부동산 매각 소식에 여의도 증권가의 스몰캡(중소형주)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바빠졌다. 주인공은 자동제어시스템 생산업체인 비츠로시스. '대북송전 수혜주'라는 틈새 테마주로만 분류됐던 이 회사가 서울 성수동 사옥을 매각해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게될 것이라는 소문에 주가가 고공비행을 한 것이다. 당시 비츠로시스의 시가총액은 약 190억 원. 이후 비츠로시스는 실적.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제값을 못 받는 '저평가주'로 주목받으며 증권사 보고서에 수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덜 알려져있을 뿐이지 비츠로시스는 자동제어시스템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알짜' 기업이다. 공공기관 등에 꾸준히 제품을 납품하면서 1989년 설립 이후 매년 빠짐없이 흑자를 냈다. 지난해에는 해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야간조명 사업, 전자입장권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 17년 연속 흑자 낸 알짜 기업= 비츠로시스의 사업분야는 산업설비 내 전력 장치 등을 제어하는 '집중원방감시제어장치'(SCADA)와 SCADA에 비해 다루는 영역이 작은 '분산제어장치'(DCS)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전력 설비의 데이터를 취합하고 중앙에서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이나, 3~4곳의 하수처리장시설을 통합해 관리하고 자동제어하는 시스템 등이 주요 제품이다. 2001년부터는 주요 도로의 교통정보를 수집해 교통량에 따라 신호 대기시간 등을 자동조절하거나, 인터넷.모바일을 이용해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지능형교통제어시스템(ITS)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자체 개발한 기술로 만들었다. 직원 190명 가운데 4분의 1이 연구직이다. 매년 매출액의 13% 정도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덕분에 자동제어시스템 분야에서의 기술력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츠로시스가 외국의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다른 경쟁기업들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실제로 비츠로시스는 1991년 남서울전력원격감시제어 설비를 한국전력에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발전소 내 설비, 철도청 산하 전철 및 국철,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상.하수도 처리시설 등 공공기관의 자동제어시스템을 도맡아 납품해오고 있다. 특히 ITS 시장에서는 사업에 손을 댄지 2년여 만에 천안.여수.충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ITS사업을 잇따라 수주해 업계에서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 해외 시장 눈돌려 도약 준비=비츠로시스는 중견 중전기 업체인 광명전기에서 출발했다. '비츠로'라는 회사 이름도 광명을 풀어쓴 '빛으로'에서 나왔다. 지금은 완전히 분리돼 '남남'이 됐지만 회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광명전기가 비츠로시스의 모기업인 셈이다. 광명전기는 비츠로시스의 창업주인 장순명 명예회장이 1955년 '광명전기제작소'를 설립해 회사를 키웠고, 1980년대에는 국내 전기 사업 분야의 '강자'로 군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 사업도 고부가가치 분야로 전문화해야한다고 판단한 장 회장은 1990년대 초반 배전반 사업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기술을 비츠로시스 등에 이전시킨 뒤, 1995년 광명전기를 신원 그룹에 매각했다. 모회사를 남겨두고 자회사를 파는 일반적인 기업매각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비츠로시스 김승진 대표는 "당시 배전반 사업은 한정돼 있는 국내시장을 놓고 중소업체가 난립중인 상황이었다"며 "미래를 위해 모기업을 팔아치우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돌아봤다. 이후 비츠로시스는 자동제어시스템 분야에 특화된 기업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1년 이후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연평균 20%, 12%씩 증가하고 있다.

손해용 기자

이 회사를 말한다
자산 많지만 관급공사 의존도 높아
신동민 대우증권 팀장

비츠로시스는 주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자동제어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중견기업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인프라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텔레비전에 가끔 비치는 고속도로 CCTV 상황실과 같은 중앙통제실의 메인 시스템은 물론 모니터.계기판에서 직원들이 사용하는 의자.탁자까지 일련의 패키지 시스템을 공급한다. 주요 납품처는 수자원공사.건설교통부.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경찰청 등이다. 정부.관공서로의 매출이 많은 덕분에 다른 기업처럼 부실채권 회수나 수주 지연 등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게 장점이다. 주식투자의 관점에서는 이런 공공기관 납품의 수혜 측면과 함께 이 기업의 자산가치를 눈여겨 봐야한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현재 260억 원 수준이지만 뚝섬 개발 등으로 본사 사옥의 부동산 가치는 230억 원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관급공사 매출 비중이 높다 보니 우리나라 내수가 위축될 경우 기업의 성장속도가 둔화할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수출을 늘려 매출을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또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IT부품.전력부품 업체의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기업가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회사를 말한다
대기업과 경쟁해도 이길 핵심기술 보유
김승진 비츠로시스 대표

김승진 대표는 "자동제어시스템 관련 핵심기술을 국산화한 덕분에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의 폭리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쟁업체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가 적지 않아 견제가 심할텐데.

"자동제어시스템 분야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사업이다. 대기업보다는 우리와 같은 중견기업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또 기술력에 있어서도 우리가 한발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사옥 매각 대금이 적지 않은데,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경기도 성남이나 서울 구로구 쪽으로 본사를 옮길 예정이다. 현 사옥을 매각해 얻을 200억 원 정도의 자금은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사옥 매각 덕인지 주가도 많이 올랐다.

"현재 2200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유보금, 매출 신장 추정치까지 감안하면 주가가 4500원은 돼야한다고 본다."

-증권가에서는 대북 송전 테마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실 대북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부가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다 보면 우리 회사의 자동제어시스템을 써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혜를 볼 수도 있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