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22. 미국 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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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폭격기 B-29를 개조해 만든 수송기. 나는 프로펠러가 4개인 이 비행기를 타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유학을 하고 싶은 내 꿈을 알았는지 미스터 스미스는 여러 장관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주었다. 또 미국 체이스 맨해튼에 거래처 중에서 견습생을 받아 줄 수 있는 의류 관련 기업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마침내 앤 테일러라는 의류 회사의 거래처 업체인 타박 오브 캘리포니아(Taback of California)라는 스포츠 웨어 회사에서 한국 학생을 받아 주겠다고 연락해 왔다.

미국으로 송금이 불가능하던 때라 미스터 스미스는 현지에서 시간제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알선해 주었다. 문제는 비자였다.

현지에서 월급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미국 노동청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 신청을 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비자가 나오지 않자 미스터 스미스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롤랜드(Roland)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 주둔할 때 미스터 스미스와 한 방을 쓰던 절친한 전우였다. 그의 도움이 주효했던지 3주 만에 비자가 나왔다.

비자의 종류는 'On the Job Training'. 당시 영사관은 이런 이름의 비자를 처음 받아봤던지, 나는 한참 뒤에야 비자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가끔씩 일반인의 승선을 허락하는 미군 수송함을 이용하는 길뿐이었다. 가을 학기에 맞춰 떠나기로 하고 짐을 먼저 부쳤다. 패스포트에 적을 내 이름도 영어식으로 지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희곡'인형의 집' 여주인공 노라. 그녀가 새 인생을 찾아 집을 뛰쳐나왔듯이, 나도 미지의 인생을 찾아 이 이름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내 이름은 그 때부터 '노명자'가 아닌 '노라 노(Nora Noh)'였다.

출국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미군 철수가 선언된 것이다. 이 무렵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심한 격동을 겪고 있었다. 일반 시민은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나라는 이북과 이남으로 갈라졌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배 편은 단념해야 한다. 이런 와중애 성악가 김자경씨(후에 오페라단 창립자)가 비행기 편으로 미국에 간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수소문해 알아보니 미국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Pan American Air Line) 항공사가 폭격기 B-29를 개조해 한.미 간 상용 비행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배든 비행기든 타고 떠나자!' 나는 일단 비행기표를 구해 놓고 짐을 꾸렸다. 어머니는 나의 유학을 완강히 반대하셨고, 할머니는 내 여행가방을 바라보며 내내 우시기만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내 편이 되어 주어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여의도 공항, 통곡하는 식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기내에 올랐다. 지난 날 일본에서 겪었던 쓰라린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도쿄에 내려 두 시간 후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하늘을 날고 있는 내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바라보던 낭만적인 구름도 바다도 하늘 위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미국 유학을 하고 싶은 내 꿈을 알았는지 미스터 스미스는 여러 장관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주었다. 또 미국 체이스 맨해튼에 거래처 중에서 견습생을 받아 줄 수 있는 의류 관련 기업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마침내 앤 테일러라는 의류 회사의 거래처 업체인 타박 오브 캘리포니아(Taback of California)라는 스포츠 웨어 회사에서 한국 학생을 받아 주겠다고 연락해 왔다.

미국으로 송금이 불가능하던 때라 미스터 스미스는 현지에서 시간제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알선해 주었다. 문제는 비자였다.

현지에서 월급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미국 노동청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 신청을 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비자가 나오지 않자 미스터 스미스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롤랜드(Roland)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 주둔할 때 미스터 스미스와 한 방을 쓰던 절친한 전우였다. 그의 도움이 주효했던지 3주 만에 비자가 나왔다.

비자의 종류는 'On the Job Training'. 당시 영사관은 이런 이름의 비자를 처음 받아봤던지, 나는 한참 뒤에야 비자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가끔씩 일반인의 승선을 허락하는 미군 수송함을 이용하는 길뿐이었다. 가을 학기에 맞춰 떠나기로 하고 짐을 먼저 부쳤다. 패스포트에 적을 내 이름도 영어식으로 지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희곡'인형의 집' 여주인공 노라. 그녀가 새 인생을 찾아 집을 뛰쳐나왔듯이, 나도 미지의 인생을 찾아 이 이름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내 이름은 그 때부터 '노명자'가 아닌 '노라 노(Nora Noh)'였다.

출국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미군 철수가 선언된 것이다. 이 무렵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심한 격동을 겪고 있었다. 일반 시민은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나라는 이북과 이남으로 갈라졌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배 편은 단념해야 한다. 이런 와중애 성악가 김자경씨(후에 오페라단 창립자)가 비행기 편으로 미국에 간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수소문해 알아보니 미국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Pan American Air Line) 항공사가 폭격기 B-29를 개조해 한.미 간 상용 비행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배든 비행기든 타고 떠나자!' 나는 일단 비행기표를 구해 놓고 짐을 꾸렸다. 어머니는 나의 유학을 완강히 반대하셨고, 할머니는 내 여행가방을 바라보며 내내 우시기만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내 편이 되어 주어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여의도 공항, 통곡하는 식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기내에 올랐다. 지난 날 일본에서 겪었던 쓰라린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도쿄에 내려 두 시간 후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하늘을 날고 있는 내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바라보던 낭만적인 구름도 바다도 하늘 위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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