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관리 일관성이 중요하다/김병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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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발견의 진리가 대양을 이루고 있는 바닷가에서 이따금 조약돌이나 조개껍질을 주우며 즐기고 있는 어린아이에 자신을 비유한 아이잭 뉴턴의 말에서 우리는 과학자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반면 무한한 확신으로 가득찬 종교적 광신자의 언동에서 우리는 지적 오만을 반성케 된다.
오늘날 우리 경제사회에 유통되고 있는 자금의 흐름량을 두고 시비가 일고 있다.
서구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신대륙의 발견에 따라 금·은 등 귀금속이 대량유입되자 16세기 이래 화폐제도가 확립되고 물가상승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른바 가격혁명이 나타나 봉건영주들의 경제적 지위가 약화되는등 큰 변화의 조짐들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고중국에 화폐수량설
이러한 변화의 과중에서 생각하는 이들이 물가상승의 원인 화폐수량에 두는 사고의 틀을 갖추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골자는 화폐수량이 늘어나면 단기적으로는 고용이나 생산에 자극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만큼 물가를 올리는 결과만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몇해전에 우연히 구해 본 중국경제사상사 한권의 책은 필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즉 관자(?∼BC645)는 『화폐가 무거우면(적으면) 모든 상품값이 싸고 화폐가 가벼우면(많으면) 모든 상품값이 비싸다… (폐중이만물경,폐경이만물중…)』는 말을 남김으로써 서구인들보다 대략 2천2백년이나 앞서 화폐수량설을 언급했다.
이와 같이 화폐수량과 일반물가수준을 하나의 인과관계의 고리로 엮어 구축한 사고의 틀은 경제학 이론의 가장 오랜 뿌리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이 뿌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논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뻗어 변형되고 정교화되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제학계와 정책당국에 대해 폭넓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무엇을 화폐로 볼 것인가. 다시 말해 시중화폐수량의 많고 적음을 알아보는 통화지표로서 어느 것을 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총통화(M2)가 타당한가?
본원통화·통화(M1) 또는 총통화에 적절히 가감한 M2A나 M2B는 어떨까? 아니면 비은행금융기관들의 온갖 예수금등을 모두 합친 총유동성(M3)으로 확대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고물가원인 다른 곳에
그런데 문제는 그 어느것을 지표로 삼더라도 잡히지 않는 화폐가 있다. 지불의 수단으로 구실하는 것을 모두 화폐로 본다면 오늘날 널리 보급되고 있는 크레딧 카드나,타인대,미청산수표 따위도 화폐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어느 통화지표로서도 잡히지 않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관리지표를 설정하고 성장하는 경제를 감안해 통화의 증가율을 일정한 백분율범위로 묶어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총통화증가율 목표를 17% 내지 19%로 설정해 통화가 관리되고 있다. 물론 M2로 잡히지 않는 수많은 다른 형태의 지불 수단들이 예년과 다름없이 대체로 같은 율로 늘어난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그 의미가 있다.
불확실성속에서 정확하게 포착하기 어려운 통화를 굳이 관리하고자 노력하는 까닭은 화폐가치를 안정시켜 국민의 재산권보호에 기본적으로 이바지하고 물가안정의 기틀을 이룩하려는데 있다. 물론 최근 물가오름세의 원인이 화폐증발보다도 임금인상,농수산물의 수급불균형,부동산의 과열경기 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변덕스러운 국민합의
공정하게 말하자면 화폐측면과 실물측면의 요인들이 결합해 물가상승을 부추겨왔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실물측면에서 물가상승요인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생산 및 고용감소 등의 희생을 각오한다면 통화긴축으로 이를 상쇄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러야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것을 해낼만한 정부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국민의 합의를 얻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합의란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더러 변덕스럽기도 하다. 언론기관들의 논조 역시 그러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국민들사이에 물가안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국민들이 한편으로는 물가안정을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임금투쟁에 앞장서고,시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는 바로 그 입으로 농민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추곡가의 대폭인상에는 적극 찬성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당들의 주장에서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언론에서도 통화관리목표 수준이 조금이라도 웃돌면 당장 인플레이션을 과장해 대서특필하고 며칠 지나면 역시 같은 지면에서 시중의 자금부족을 크게 다룬다.
올해 통화관리목표와 방식에 대해 시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시중의 자금사정은 이해관계의 관점에 따라 과다일 수도,과소일 수도 있다.
투자의욕이 왕성한 경제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금은 부족하다. 달나라가 투기대상으로 남아있는한 항상 그러할 것이다. 정책당국에는 일관성과 신축성의 조화가 요망되고 일반국민에게는 통화관리가 일정한 숫자관리가 아니라 그 언저리 관리라는 인식전환이 요망된다.<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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