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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G10으로 ① 주택시장 정상화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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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경제연구소(SERI)와 중앙일보 경제연구소(JERI)가 G10으로 나아가기 위한 30대 과제를 선정했다. 그중 민생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그 첫째 과제로 삼았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47평형 아파트에 전세 사는 김태일(41.교사)씨는 현재 내집 마련 꿈을 접은 상태다. 김씨는 지난해 초 전세금과 예금을 합친 3억원에 나머지를 대출받아 당시 5억원 하던 전셋집을 살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 것 같아 망설였다. 그 집은 1년 새 4억원이 더 올랐다.

집이 있는 사람에게도 집값 상승은 부담이다. 서울 강남구 50평형 아파트에 20년째 살고 있는 이모(56.대학강사)씨는 지난해 말 종합부동산세를 내느라 생명보험까지 깼다.

부산시 금정구 아파트에 사는 박모(38.자영업)씨는 집값 이야기만 나오면 속이 끓는다. 지난해 집값 폭등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박씨의 아파트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부산시 금정구의 아파트값은 지난해 2.2%,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본격화한 2003년 9월 이후 9.1% 하락했다. 그는 "집값이 올라 연봉보다 많이 벌었다는 서울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1980년대 말 전국적으로 집값이 폭등했다. 3저 호황 덕분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이어 90년대 초부터 5년간 집값은 떨어졌다.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의 주택 공급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2001년부터 3년간 집값이 다시 급등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99년 경기가 나빠 신규 주택공급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느라 돈을 많이 푼 결과다.

지난해에 또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것은 국토 균형 개발 명목으로 전국적으로 풀린 수십조원의 토지보상금, 금융회사들이 낮은 금리로 경쟁적으로 쏟아낸 주택담보대출의 영향이 컸다.

주택시장도 시장이다. 수요가 늘면 집값이 오르고 공급이 늘면 집값은 내려간다.

이런 상황에선 수요 쪽의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너무 많이 풀린 돈부터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금리를 올리면 빚으로 내집 마련에 나선 많은 가계가 피해를 본다. 현재 떠돌아다니는 돈을 주택만큼 좋은 투자상품으로 빨아들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 이미 풀린 돈보다 겁나는 것은 앞으로 풀릴 돈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국토 균형 개발 사업을 늦추거나 줄여야 한다.

공급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2005년 주택보급률은 105.9%. 가구당 한 채가 넘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집값 오름세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수준'의 집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작은 집보다 큰 집이, 지방보다 수도권에 집이 부족한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 더 크고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면적은 2005년 6.5평으로 지난 30년 새 2.8배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땅과 집이 모자란다는 일본(1인당 주거면적 11평)보다 아직도 좁다. 더 크고 좋은 집에 살려는 욕구가 여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장소도 문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자리와 돈은 수도권에 모여 있다. 2003년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새집 열 채 중 여섯 채가 수도권에 지어졌다. 이후 규제 강화로 수도권의 새집 비중은 계속 줄어 지난해 31.3%까지 주저앉았다. 수도권의 집값 폭등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얘기다. 건교부조차 2003년 이후 10년간 필요한 새집 440만 호 중 55%를 수도권에 지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집값은 고가.대형 아파트부터 올라 서민용 중소형 아파트로 불붙는 현상이 반복됐다. 또 집값 상승→규제→공급 위축→집값 추가 상승→규제 강화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런 순환고리를 끊으려면 시장이 '원하는 곳의 원하는 집'을 늘려야 한다.

공급과 관련해선 규제 철폐가 그 첫걸음이다. 집값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은 원하는 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투기세력은 이를 부추길 뿐이다. 따라서 개발이익환수 등을 전제로 재개발.재건축의 소형 평형.임대주택 의무비율 규제 등을 완화해야 한다.

잠재적 수요가 큰 수도권 신도시는 늘 검토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중.대형 주택의 비율을 늘려야 함은 물론이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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