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투기 기술이전 수중이 쟁점|한-미 줄다리기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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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차세대 전투기 사업(KFP)이 기종 변경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달 28일 F16으로 최종결정이 내려진데 이어 우리정부가 미 정부에 양해 각서 (M0U) 초안을 보냄에 따라 또다시 새로운 협상에 들어가게 됐다. 국방부는 빠르면 4∼5개월 안으로 양국정부가 도입방식 등에 합의, 양해각서를 작성한 뒤 미 의회의 인준을 거쳐 연말까지 구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실무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업의 총 규모가 52억 달러에 이르는 큰 사업인데다 양국간에 도입방식 및. 기술이전 수준 등에 대한 이해가 엇갈려 최종 타결까지는 진통과 난항이 예상된다. 최근 걸프전에서 보았듯이 유사시 승리를 확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공중전력을 키우기 위한 KFP사업의 지금까지 진행돼 온 과정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알아본다.

<1차 기종 선정>
정부가 이 사업을 처음 구상한 것은 5공 시절이던 83년 초. 당시 공군력 증강 및 항공산업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정부는 이를 위해 FX시리즈사업을 장기적으로 추진키로 하고 85년 초까지 제1단계 계획을 확정했다.
그 내용은 최신예전투기를 1백20대 새로 배치하되 이를 완제품 조립·국내조립·국내 공동 생산 등으로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비교적 해외군수 판매에 너그러웠던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정부는 미국의 최신예 기종인 F16과 FA18을 대상으로 기 중 선정 작업착수와 함께 미 정부와의 교섭에 들어가 87년 12월 국방부 전투기 사업단장과 미 국방부 고위관리간에 ▲완제품도입 12대 ▲국내 조립 36대 ▲국내 공동 생산 72대 등으로 도입방식에 합의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3대20대 개의 비율을 주장했으나 미 측이 자기들에 유리한 완제품 및 국내조립 비율을 높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 이같이 결정됐다.
이같은 합의내용은 회의록 형식으로 근거로 남겨졌으며 89년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간 연례 안보 협의회의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나 그해 초 미국을 시끄럽게 했던 일본의 FSX사업과 연관돼 미 상원의 존 헤인스 의원(공화·펜실베이니아)과 앨런딕슨 의원(민주·일리노이)이 현지 공동 생산허용은 한국으로 하여금 미래의 항공산업 경쟁국이 되게 할 우려가 있고 미국의 대외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완제품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회와 행정부도 이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여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미 상무 부 측은 대응구매 비율을 합의된 30%수준보다 더 낮출 것을 요구, 우리측에 압력을 가해 왔다.
이같은 사정으로 우리 정부는 사업의 가장 기초인 기종선정을 미루다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미국내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89년12월20일 미 맥도널 더글러스사의FA18을 사업기종으로 선정했다.

<기종 변경>
KFP사업이 시작되면서 대상기종 제작 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은 당연한 일.
F16제작사인 미 제너널 다이내믹스 사(GD)와 FA18제작사인 미 맥도널 더글러스 사(MD) 는 각 사의 사운을 걸고 초장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83년초 당시 총 사업규모가 줄잡아 30억∼40억 달러에 이르는 데다 부품공급과 앞으로 계속될 2단계·3단계사업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양 사는 자사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한편 각종 지원방안을 제시하는 등 로비 경쟁을 벌여 왔다.
MD측은 FA18의 야간전투능력·전자전 능력 등 무장에서의 우수성과 상발 엔진이 갖는 안정성을 내세웠다.
이에 반해 GD측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F16의 성능을 일부 보강하면 FA18에 버금갈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15개국에서 주력기로 성능이 입증됐으며 한국 공군과 미국 공군도 이미 보유하고 있음을 내세웠다.
또 MD가 ▲자사의 헬기 제품 다양화에 따른 한국산 민항기 용 부품과 조립부품의 대한 직 구매 ▲전투기 정비기술 지원 및 기지 시설 개선 등을 제시한 반면, GD측은 ▲한국 F4의 기능 현대화 ▲각종 연습기의 기능향상 등을 보너스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방부를 비롯, 경제기획원·상공부·과기처 등 7개 부처 및 기관이 매달려 기종 선정과 관련한 사업분석을 해 왔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공군을 비롯한 국방부 등 사용부처는 성능 면을, 경제기획원 등 예산부처는 경제성을 내세워 의견 조정에 갈등이 있었다. 1차로 89년 12월 FA-18을 선정하기에 앞서 실제로 공군이 무기체계 도입 심의위에 FA18을 건의했으나 F16이 7대3정도로 우세, 결정을 유보하기도 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FA18로 사업기종이 선정되자「지원」부처와 관련된 거액의 로비 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해 9월초 공군 참모총장의 신병으로 인한 교체에 이어 정부가 그해 11월1일 MD측의 가격 인상 요구와 기술이전 문제 등을 이유로 이 사업을 전면 백지화시키자 이같은 의혹이 더욱 증폭됐었다.
정부는 당시 백지화 이유로 MD측이 계약을 앞두고 대당 47%가 증가한 4천2백만 달러를 요구, 전체 예산이 1조6천억 원이 더 소요되고 54개 기술이전 항목 중 비교적 수준이 낮은 부분만 이전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백지화이후 5개월간 북한의 공중전력 분석과 함께 양 기종의 성능 및 작전 운용 성·항공산업 육성 기여도 등은 물론 제한된 국방예산 등을 감안, 심층 분석한 결과 F16으로 기종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북한이 3백70여대 우세한 공군력의 양적 열세를 만회해야 하는 불가피성과 함께 당초 계획했던 예산보다 12억 달러가 더 드는 FA18보다 최근 성능이 크게 개선된 F-16을 골라잡은 셈이다.

<전망>
국방부는 이미 FA18로 선정했을 당시 양국 정부간 양해 각서를 교환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F16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왜냐하면 도입방식·대응구매 비율 등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변경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 의회에서 걸프전을 계기로 첨단기술 이전에 대한 보호주의 론이 크게 일고 있는 데다 UR협상과의 연계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사업초기와 마찬가지로 가급적이면 완제품 판매는 늘리고 대응구매 비율을 줄여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새로 하려 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체니 미 국방부 장관도 1월25일 이종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한국이 완제기 도입 외에 공동생산 등의 계획을 재 시도할 경우 미 의회 내에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미 의회 등 이 도입방법 등에 관해 우리가 물러설 수 없는 수준까지 양보를 요구할 경우 사업자체를 또 다시 백지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보다 사업개시가 훨씬 더 늦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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