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도서관 꿈은 이뤄졌지만 내실운영이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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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10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방문, 어린이들과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유리벽으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커다란 홀 같은 열림실에는 마치 소인국에 온 듯 아이들 키높이의 책꽂이에 그림책들이 가득하고, 휠체어를 탄 아이들은 점자 그림책 코너 앞에 놓인 장애인용 책상 위에 책을 올려 놓고 높낮이를 조절하고 있다.

열람실 중앙의 유리기둥 안엔 대나무가 '나처럼 쭉쭉 뻗어보렴' 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책을 읽다 지루해진 아이들은 '이야기방'에 가서 구연동화를 듣거나 '도란도란'방에 가서 실컷 떠들거나, 아니면 윗층으로 올라가 뛰놀고 온다. '아그들' 방에선 그림책을 가지고 장난하던 아기가 하품을 하자 엄마는 바로 옆 '코∼하는 방'으로 데려가 재운 뒤 부모들을 위한 교양서를 펼친다.…

'꿈'이 이루어졌다. 10일 '기적의 도서관' 제 1호관이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삼리에 그 꿈같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민단체인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과 MBC-TV의 교양오락프로그램 '!느낌표' 제작팀이 함께 추진해 온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10개월 만에 맺은 첫 결실이다.

순천시는 이날 오후 2시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조충훈 순천시장, 국민운동 상임대표인 도정일 경희대 교수, 명예관장인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적의 도서관 개관식을 가졌다. 권 여사는 축사를 통해 "어린이가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희망찬 미래를 열어 가는 값진 투자"라며 "순천 어린이 전용 기적의 도서관 개관을 기점으로 앞으로도 전국 각지에 제2, 제3의 '기적의 도서관'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약간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 1천5백여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인 순천 기적의 도서관 전경. [순천시 제공]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총 사업비 20여억원을 들여 아파트 밀집지역의 초등학교 바로 앞에 지었다. 대지 면적 4천2백4㎡에 건축연면적 1천3백4㎡(3백95평) 규모다. 1층은 열람실.영유아수면방.구연동화방 등으로, 2층은 원형열람실.디지털정보방.놀이방 등으로 꾸며졌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어린이책 운동 관계자 등이 참여한 국민운동 운영위원회가 1만 여권의 어린이책과 멀티미디어자료를 골라 놓았다. 이날 개관식은 '준공식'의 의미로, 실제로는 2주쯤 후부터 일반인들의 열람이 가능하다.

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은 무엇보다 시민단체와 방송, 시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정일 대표는 "국민운동이 추천한 책들을 방송이 적극 홍보하고, 시민들이 이를 구입함으로써 모아진 기금을 토대로, 지자체가 부지와 건립비를 상당부분 지원함으로써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민관이 함께 건립위원회를 구성해 세부 운영사항을 결정하고, 일단 지방자치단체에 기증된 후에도 앞으로의 운영에 민간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 대표는 "1호관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만들다 보니 건립비도 예상 외로 많이 들었지만 2호관부터는 좀더 내실을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느낌표'를 통해 선정된 기적의 도서관은 모두 12곳으로, 오는 12월 15일 준공 예정인 제천 등 모두 7곳이 공사 중이다. 하지만 국민운동과 지자체가 건립비 또는 운영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시 달서구와 태백시, 고양시 등에선 첫 삽도 못뜨고 있다.

순천의 경우에도 '기적'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용훈 부장은 "어떤 도서관이냐 보다 어떻게 운영하는 도서관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도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서관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켜야 '살아있는' 도서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대해 국민운동측의 부실한 정보공개와 MBC-TV의 홍보 지상주의적 방송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MBC-TV측은 '!느낌표'를 다음달까지 방영할 계획으로 후속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느낌표'의 김영희 PD는 "후속물에는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같은 코너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렇지만 일부 지자체의 경우 건립비를 전액 지원하는 곳도 있어 12월 말까지의 방송이면 이미 선정된 12곳의 기적의 도서관 건립 기금 마련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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