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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새해특집] '외환위기 10년' 전문가 좌담 가자! G10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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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 경제 특유의 역동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외환위기 이후 약해진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을 높이는 방안을 좌담회 참석자들은 논의했다. 왼쪽부터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전태국 한국사회학회장,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이영선 한국경제학회장. [사진=최승식 기자]

세계에 역동을 자랑하던 한국 경제.사회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던 1997년'IMF 외환위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아직도 그 위기가 몰고 온 상실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또 그 이후 10년을 지나는 동안 한국 경제.사회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잃었던 경제 활력과 사회적 일체감을 되찾고 새로운 역동의 10년을 맞을 길은 없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사회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김정수 중앙일보경제연구소장(사회)=올해는 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과연 위기에서 말끔하게 벗어난 것인가.

▶이영선 연세대 교수=지표로는 일단 성과가 있다. 거시경제 지표가 좋아졌고,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등 실물지표도 나아졌다. 금융 구조조정을 했고, 금융감독 체계도 통합.재편됐다. 그러나 바뀐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구조조정을 열심히 했으니 성장 동력도 얻고 미래가 좀 보여야 하는데 썩 밝은 모양새는 아니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외환위기의 측면에서만 보면 외환보유액 등을 감안할 때 다시 그런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태국 강원대 교수=경제위기가 우리에게 준 상처는 너무 컸다. 비정규직이 확대됐고 고용이 불안정해졌다는 점에서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힘들다.

▶사회=외환위기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정 소장=변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과거 10년간 기업이 가장 많이 변했다. 기업 경영이 과거 규모 위주에서 수익성과 성과 위주로 변했다. 그 결과 기업 실적과 체질이 개선됐다. 금융도 대규모화됐고 건전성도 좋아졌다. 그러나 정부와 노동계가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시장에 많이 개입한다. 노동시장은 대기업 강성 노조를 볼 때 유연해졌다고 하기 힘들다.

▶전 교수=외환위기는 우리가 세계화를 경험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다. 개별 국가 단위의 시각에 머물러 있던 우리 사회가 포스트 내셔널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권위주의 발전모델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도 됐다. 합리성.투명성 등도 세계화 과정 속에서 얻은 것이다.

▶이 교수=글로벌 기준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과거엔 시장이 잘 작동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장이 기능하는 영역이 커졌다. 하지만 글로벌 기준이 우리 경제에 제대로 접목돼 잘 돌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연구 과제다.

▶사회=위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잃은 것도 있을 텐데.

▶정 소장=영미식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자본시장이 기업을 규율하는 변화를 겪었다. 회사가 잘못하면 경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고, 주주가 경영진에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부채비율 감축,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 폐지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 경영은 보수적으로 변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투자 부진과 저성장으로 이어졌다. 외환위기 당시 혼났던 경험까지 합쳐져 기업 경영이 보수적.방어적이 됐다. 한국 기업의 특성인 역동성이 사라졌다.

▶전 교수=공동체적 유대의식이 흔들리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상생의 개념도 약화됐다.

▶정 소장=외환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직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공격적으로 도입된 성과급제도 등으로 전체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각박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등 한국인의 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더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아파트 투자 열풍의 원인도 이런 게 아니겠나.

▶이 교수=국가재정이 어려워졌다. 재정 건전성이 낮아지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 민간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

▶사회=저성장의 병폐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양극화가 아닐까 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다. 한마디로 만병의 근원이다. 양극화는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 정치가 이런 사회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 교수=지니계수를 보면 위기 직후인 98~99년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지만 그 이후 서서히 회복된 것도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됐다고 얘기하긴 힘들다.

▶전 교수=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는 그래도 국민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 줬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국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니 구조조정이니 하면서 국민 각자의 삶의 터전인 일자리를 불안하게 했다. 지니계수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 가장 양호했던 수준까지 회복된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소득보다 자산 불평등 문제다. 이념 갈등으로 인한 손익은 함부로 판단하기 힘들다. 냉전 체제 하에서 정치적 미성숙 상태였던 국민의 정신이 최근의 좌우 갈등을 겪으면서 깨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리=서경호 기자<praxis@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기업가 정신 북돋워 일자리 창출 …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사회=요즘 경제 주체들은 불안하다.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일체감)을 되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연대감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 소장=87년 이전에는 국가의 지배구조가 정치권력-관료-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한국 주식회사' 모형이었다. 지금은 여기에 시민단체와 노조가 추가되고 정치세력도 다양해지면서 수평적인 지배구조로 바뀌었다. 갈등이 많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정치 시스템을 안정시켜 예상 가능한 변화로 이끌어야 한다.

▶전 교수=시장경제에 입각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국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사회국가는 인간다운 생활을 사회와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복지국가에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국가에서는 시장원리가 맘껏 작동된다. 우리도 독일처럼 자유주의 국가모델 위에서 사회국가를 구축할 수 있다. 사회적 연대감을 위해선 다원주의 모델이 더 퍼져야 한다.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배제하는 원시적 모습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사회=경제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옛날의 활력을 찾으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정 소장=선진국의 특징이 맞벌이 안 하면 못 사는 것이다. 요즘 맞벌이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어느 정도 잘살고 있는 것 아닌가. (웃음) 올해는 환율 덕분에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을 것 같다. 이런 수준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기업.가계 모두가 우울증에 걸려 있다. 기업이나 부(재산)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전 교수=우리 국민의 평등주의적 생각이 너무 강한 것 같다.

▶사회=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놓친 게 지난 10년간 가장 큰 손실이라고 본다. 이를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 소장=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경제 활력을 높이려면 투자해야 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다 기업이 하는 것이다. 기업이 활력을 찾는 게 우리 경제의 활력을 찾는 것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강성 노조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노조로 바뀌고, 정부 규제도 기업 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조세 부담을 줄여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면 경제 성장률을 더 높일 수 있다. 활력의 핵심은 도전.모험 정신, 즉 기업가 정신이다. 우리 문제는 기업가 정신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경제 활성화는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이 교수=정부가 기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정부는 규칙을 확실하게 정하고 운용해야 한다.

▶전 교수=낙관적인 얘기를 좀 하겠다.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다. 막스 베버는 유교 전통이 비(非)서구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고,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도입되면 상품 물신주의가 그 사회를 관철하는 논리가 된다고 했지만 다 틀렸다. 한국은 유교적 전통이 있으면서 자본주의 발전에 성공했다. 베버와 마르크스를 무색하게 만든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감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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