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꼬 ~ 옥 백수탈출 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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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12월 29일 ‘백수’ 상담 캠프에 참가한 이승훈(앞줄 (左))씨와 조무영(여.(右))씨가 함께 춤을 추며 마음 치료를 하고 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새해 소망의 씨앗을 꽃송이에 담아 피워 보세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4층 시청각실. 강사의 지시에 눈을 감고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잔잔한 음악에 맞춰 천천히 팔을 뻗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부터 팔을 활짝 펴고 빙글빙글 도는 사람까지. 각기 다른 몸짓으로 취업과 창업.진학 등 새해 소망을 담은 꽃송이를 표현해 냈다.

이 프로그램은 '백수'들을 위해 열린 1박2일 상담 캠프 중 마음을 춤으로 표현하는 '춤 테라피(theraphy)' 시간.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을 위해 민간단체 '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희망청)'가 개최한 이 캠프에 참가한 7명은 모두 인터넷 카페 '백수회관' 회원인 청년 구직자와 실업자들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와 성별은 다르지만 백수라는 공통점 하나로 2006년 세밑에 뭉쳤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주로 집에만 머물러 지내던 이들에게 남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춤은 어색하기만 했다.

백수 생활 9년째인 손기태(37)씨도 처음엔 주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강사의 지도에 따라 취업 스트레스를 손짓으로 떨쳐내는 '털기춤'을 하면서 긴장된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자신의 발을 쓰다듬고 마음껏 함성을 지르면서는 얼굴에 웃음이 비쳤다. 손씨는 "늘 집에서 인터넷만 했는데 이렇게 땀 흘린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속에 있던 뜨겁고 답답한 게 터져 나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실직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황정은(23.여)씨도 춤을 추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온몸을 이용해 대화하기'에 이르러서는 흥에 겨워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그는 "자기 혐오감에 시달렸는데 나와 함께 춤을 춰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김연우(40)씨는 제과점 폐업 뒤 2년 넘게 쉬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폐인 취급을 받는 게 늘 속상했다. 하지만 이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얘기하면서 백수 탈출의 자신감을 얻었다. 김씨는 "팔을 쭉 뻗을 때 강렬한 자신감이 느껴지면서 2007년에 새로 시작할 사업이 꼭 성취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2년째 백수 생활을 하면서 불면증에 걸렸던 박지용(27)씨도 "최근에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겠다고 진로를 정했는데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 시간 동안의 춤 테라피를 마친 뒤 모처럼 말문이 트인 캠프 참가자들은 다음날 새벽까지 밤새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백수회관 회원 1만여 명 중 이런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워낙 취업이 어렵다 보니 자신감을 잃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가 돼 구직을 포기한 경우가 상당수다. 백수회관 카페 운영자 주덕한씨는 "백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닌 예비 사회인"이라며 "2007년엔 백수들이 힘차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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