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죗값 치른 것" "정치적 암살" 환호·분노 엇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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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에 오르기 직전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모습(사진左). 지난해 12월 30일 후세인이 처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호주 시드니에서 이라크 출신 주민들이 이라크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中). 같은 날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역인 알호레야에서는 후세인 지지자들에 의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 30여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右).[바그다드·시드니 AFP·로이터=연합뉴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0일 처형된 데 대해 국제사회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현지에 파병한 영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는 물론, 숙적 관계였던 이란과 이스라엘 등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는 분노를 표시했다. 유럽 국가들은 후세인이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사형 자체에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폭력의 악순환 등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환영=마거릿 베케트 영국 외무장관은 "후세인은 죗값을 치렀다"며 "영국은 사형제를 지지하지 않지만 주권국가 이라크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파병한 호주와 폴란드 정부도 "이라크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며 정의가 실현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부총리는 "이스라엘에 중대한 위협이었던 독재자가 끝내 죽음을 자초했다"고 평했다.

1980년대 이라크와 치열하게 싸웠던 이란도 후세인의 처형을 반겼다. 하미드 레자 아세티 외교차관은 "후세인 처형에서 가장 큰 승리자는 바로 이라크 국민"이라고 말했다. 후세인의 수니파 정부에 핍박받던 이라크 내 시아파와의 연대감을 강조한 발언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 분노=아랍권은 분노했다. 파우지 바드룸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변인은 "이는 정치적 암살"이라며 "전쟁포로를 보호하도록 돼 있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알쿠드스 알아라비 신문의 압둘 바리 아트완 편집장은 "이슬람 축제인 희생제 기간에 처형한 것은 이슬람을 완전히 무시한 경멸적 행동"이라고 반발했다. 리비아는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으며 관공서에는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다.

◆ 개탄과 우려=크리스티나 갈라크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변인은 "후세인이 저지른 범죄와 사형 집행 모두를 비난한다"고 밝혔다. 루이 미셸 EU 집행위원은 "야만적 행위로 야만과 싸울 수는 없다"며 "사형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으며 EU의 가치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프레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도 "사형 집행은 비극적인 일"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사형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후세인 처형은 이라크 내 정치적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라며 "이라크는 이제 폭력의 한복판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전면적인 내전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도 "이라크 내 종파 간 긴장도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담담과 실속=중국 외교부는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라크가 이른 시일 안에 안정과 발전을 이루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라크 안정을 위해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이젠 화해하고 단합할 때"라는 내용의 짤막한 성명만 발표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정치적 판단은 최대한 배제한 채 철저히 실속을 챙기겠다는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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