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항공 사진작가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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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06년의 마지막 태양이 서해를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는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정치는 요동쳤고, 경제도 휘청거렸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반만년 쌓아

온 한국인의 파워는 한두 해에 흔들릴 게 아닙니다. 우리의 국토가 그렇습니다. 북핵 파동, 집값 폭등에

놀라고 상심한 우리들을 어머니의 따듯한 가슴으로 감싸안았습니다. 2007년의 희망을 찾으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거칠 것 하나 없는 창공에서 저 밑 세상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한결 넉넉해집니다.

앞만 보고 뛰어온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생깁니다. '하늘 여행'에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항공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60)이 동행했습니다. 2004년 처음 방한했던 베르트랑은 올해에도 두 차례 한국을 찾아와 우리의 산하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가 지난 2년 포착해온

'한국의 얼굴'을 싣습니다. 하늘에서 보니 우리 땅이 한층 아름답고, 한층 정겹습니다.

2007년 새해를 열어젖히는 힘이 불끈 솟아납니다.

박정호 기자

백설의 향연

늦겨울의 설악산 북쪽 자락입니다. 휴전선 남쪽 민간인 통제구역에 흰 눈이 가득합니다. 순백의 햇살을 받고 있는 나목(裸木)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깨를 기대고 사는 우리처럼 이 나무 가지와 저 나무 가지가 서로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촘촘히 얽힌 신경세포를 확대한 것 같습니다. 손에 손 잡고 사는 세상 이치를 일깨웁니다.

성장의 기억

옛 생각이 절로 납니다. 전남 목포시 삼학동의 주택가입니다. '잘 살아 보자'며 힘을 모았던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기억납니다. 가요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삼학도 앞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근대식 양옥을 바둑판처럼 지었습니다. 혹자는 획일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알록알록 쌍둥이 같은 집들이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네 서민들의 집 한 칸이니까요.

전통의 향기

경주 양동마을의 한옥입니다. '입 구'(口)자 형태의 기와집 마당에 사뿐히 앉아있는 항아리가 왜 이리 예쁠까요. 수백 년 풍상을 견딘 기왓장 하나하나도 보배임에 분명합니다. 부엌에서 음식을 끓이는 어머니, 안방에서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당장 달려가 두 다리 쭉 펴고 쉬고 싶습니다.

조상의 미소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 보성군으로 넘어가는 길에 만난 묘소입니다. 단정하게 자리 잡은 봉분들이 사람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죽은 자가 묻혀있는 무덤의 어두움이 없습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흐릅니다. 한국인의 해학에 무릎을 치게 되죠.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우리들의 지혜입니다.

농부의 준비

아지랑이 일렁이는 남도의 봄 들녘입니다. 완도에서 목포로 가는 중에 셔터를 눌렀습니다.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촌부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랑 하나, 이랑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입니다. 올해에도, 새해에도 농심(農心)은 천심(天心)입니다. 농부의 황소걸음으로 못해낼 게 없을 겁니다.

■ 얀 아르튀스-베르트랑=1946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영화배우로 일하다가 76년 사자행동학을 연구하러 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진가로 변신했다. 94년 유네스코 지원으로 '하늘에서 본 지구' 프로젝트를 시작, 지금까지 150개 국에서 항공 촬영을 했다. 2000년 나온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는 전세계에서 350여만 부가 팔렸다. 60여 나라에서 열린 사진전에 6000여만 명이 다녀갔다. 내년 한국을 다시 찾아 '하늘에서 본 한국'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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