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곧 국가경쟁력 새해엔 더 뛰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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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중견기업이 많아야 나라 경제가 강해진다'는 구호 아래 '파워! 중견기업' 시리즈를 8월 21일부터 연재해 왔다. 국내 최대 방제(防除) 업체인 세스코를 시작으로 스팀 청소기 대박 신화를 일궈낸 한경희생활과학까지 88개 기업이 등장했다. 이 중 세 업체 대표가 모여 새해 소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올해 기업 경영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권혁운 회장="시공능력 평가 순위가 지난해 127위에서 올해 75위로 뛰었다. 하지만 올해 건설업은 어느 해보다 힘들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값 아파트'를 들고 나오고,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는 등 정책이 쏟아졌다. 국민의 기대심리가 잔뜩 커져 기업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멍멍한 상태다. 아파트를 지으려고 은행 돈을 빌려 확보한 수천억원어치 땅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이다."

경규한 사장="우리 회사는 그동안 추진해 온 원가 경쟁력 개선책 덕분에 올해 성과가 괜찮았다. 쌍춘년 결혼 특수가 있었던 데다 학교 가구 교체에 힘입어 가구 판매가 20% 이상 신장했다."

정백운 사장="생산장비를 만드는 업체들에는 어려운 한 해였다. 환율 하락에 따른 가격 조정 문제로 수백억원대 수출 계약이 보류되기도 했다. 올해 예상만큼 매출이 늘지 못했지만 새 장비 개발 덕분에 40%대 성장을 달성했다."

사회="우리나라에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경="투자 자금 조달이 어렵다. 과거엔 사업성을 보고 대출해 줬지만 요즘엔 담보가 없으면 안 된다. 요즘 은행들은 기업이 조금만 어렵다 싶으면 바로 대출 회수에 들어간다. 대다수 중견기업은 은행 거래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권="경 사장 말처럼 돈을 빌려 투자를 좀 해보려고 하다가도 은행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따져보다 지레 포기하게 된다. 요즘 은행의 대출 관행을 보면 믿고 빌릴 수가 없다. 우리 회사만 해도 얼마 전까지 은행에서 찾아와 돈 좀 빌려 가라고 애원하더니 올해 실적이 주춤하니까 발길을 뚝 끊더라."

정="요즘 대기업 중에 중소기업을 쥐어짜려는 곳은 없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급에선 납품 가격 등을 놓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거래처인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부터 중소기업이 개발할 수 없어 수입하는 장비만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는 거래업체에 발주하고 있다. 이 같은 상생 경영 사례가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사회="중견기업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끼여 있다. 중소기업처럼 정책적 지원을 받는 게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경쟁하려면 어려움이 있을 텐데."

정="우리 회사의 인원은 295명으로 아직은 중소기업이지만 300명 이상 되면 중소기업에서 졸업하게 된다. 그러면 법인세 감면 같은 세제 혜택이 사라지고 각종 정책자금 지원도 받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사람을 더 뽑고 싶지만 망설인다."

권="건설업의 특성상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라고 해서 특별히 혜택을 보는 건 없다. 회사를 키우려 해도 주변에서 말린다. 회사가 커지면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경="관리직 인재를 구하기 힘들지만 생산인력 구하기는 더 힘들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독립했는데 오히려 떨어져 나오니까 좋은 측면도 있다. 비효율적인 회의가 줄고 다른 신경을 안 써도 된다."

정="지방 기업에 대해선 정책적으로 우대해 줄 필요성이 있다. 인력 확보나 물류 등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똑같은 기업이라도 지방에 있으면 수도권 기업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회="내년 역시 경기가 좋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중견기업으로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권="내년 도입하려는 분양가 상한제나 후분양제 등은 중견 건설업체에 치명적이다. 정부는 건설사를 폭리를 취하는 집단으로 몰고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토지 매입 단가가 많이 올라간 데다 시행사들이 건설사의 이익 범위를 넘어선 몫을 과다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자금력이 달리는 중견.중소기업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경="꼭 중견기업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설비 투자를 늘리려면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우리 회사도 경기도 용인 공장을 확장하려 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못 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공장을 하나라도 더 못 끌어와서 안달이다. 이렇게 해선 일자리 창출은 요원하다."

정="대기업이 설비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중견.중소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다. 언론도 기업인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한다.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파워! 중견기업'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훌륭한 중견기업이 곳곳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세 분은 어려운 상황에서 건실한 기업을 일궈냈는데 비결이 있다면."

권="나는 배고픈 시절을 겪은 세대다. 돈 버는 일의 어려움과 돈의 가치를 아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다져진 집념이 기업 경영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세계적인 전문 기업을 목표로 생산.설치 기술 향상에 주력해 왔다. 품질은 이탈리아나 독일 제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이와 함께 원가 절감에 주력해 최근 완공한 베트남 현지 공장보다 국내에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정="장비 회사도 특화된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제품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새로운 장비 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산학 협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리=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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