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동시 유엔가입 동북아 안보에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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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걸프전후 동북아 안보」 영 드리프트교수/아세안국들 군비지출 크게 증가
걸프전쟁은 미소강대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함으로써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지를 증명시켜 주었으며 따라서 한국은 지역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가야할 것이라고 영국의 국제문제연구소(IISS)부소장을 역임한 라인하드 드리프트가 말했다. 다음은 현재 영뉴캐슬대 교수로서 동대학에 유럽최초로 한국문제연구과정 개설문제를 한국국제문화협회(회장 유혁인)등과 협의하기 위해 방한중인 드리프트교수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다.<편집자주>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질서 배후에 내재하고 있던 위험이 걸프전쟁을 통해 처음으로 터져나왔다.
걸프전쟁은 대부분의 갈등이 전통적인 적대감·인종분규·국경분쟁과 같이 슈퍼파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들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환기시켜 주었다.
슈퍼파워는 국제문제에 늘 중재자로 나서왔다. 그리고 이들이 중재자로서의 억지력 행사를 철회할때 지역헤게모니를 노리는 세력은 자신의 야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을 걸프전쟁이 우리에게 증명해 보였다.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긴박한 대립은 한국과 중국의 두분단국에 의해 야기된 긴장이다.
나는 냉전후의 상황이 이 두곳에서 군사적 대결의 위험을 증가시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군사력은 위협적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동구공산주의가 심각한 경제난과 자본주의국가를 상대로 한 무역의 비경쟁성으로 몰락한 후에도 정치상황이 더욱 경직되고 있다.
이제 걸프전의 여파로 아시아 각국은 군비경쟁에 들어간 느낌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5개국의 군사비지출은 지난 몇개월사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도 이같은 시대조류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더이상 이와 같은 군비경쟁에 말려들 여유가 없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에서 벗어난 한국은 지역국가들의 주도권쟁탈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지역안보장치를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의 접근방식이 있을 수 있다.
유엔의 집단안보원칙과 헬싱키선언식의 지역안보장치가 그것이다.
걸프전은 미소공조체제가 세계 안보와 지역균형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 좋은 일례다.
따라서 미소가 협조하는 가운데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아시아안보에 필수적이다.
다만 남북한의 유엔가입방식이 비분파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건과해서는 안된다.
만일 한쪽이 상처받는 방식으로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이뤄진다면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양국동시유엔가입이 한반도통일에 결정적인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일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소련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한국은 이제 더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중국과의 정식국교 수립까지 겨냥하고 있는 한국은 이제 국제무대의 전면에 나서야 할때다.
이는 과거의 「군사적 오점」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일본에도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한국은 일본이 이제까지의 유보자세를 버리고 아시아 지역내의 주도적위치를 차지하는 시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걸프전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소양국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를 증명시켜준 전쟁이었다.
아시아는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다른 민족이 피를 흘린 대가로 이런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이런 교훈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면 행운은 이미 아시아의 것이 아니다.
철저히 자각하고 충분한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생은 결코 두번 기회를 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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