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방안 수정여부 관심|최고인민회의 11일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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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는 1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릴 예정인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2차 회의에서 북한의 통일방안과 유엔정책이 일부 수정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련·동구 및 북한정보에 밝은 국내 외교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내용을 일부 수정, 통일에 이르기까지 잠정적으로 남북의 지역정부가 각각 외교·군사권을 관장케 하는 수정된 통일방안을 마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의 연설을 통해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또 북한은 이와 함께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상옥 외무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해외 소식통들로부터 북한이 이른바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의 일부를 변경할지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한 바 있으나 아직 상세한 내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실제로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장관은 유엔정책에 대해서도 『북한의 통일방안 수정가능성을 유엔가입 정책의 변화와 연결하는 것은 다소 비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외 북한문제 전문가들도 북한의 대남·통일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각기 다르게 진단하고 있다.
◇대남정책의 기조=유석렬 교수 (외교안보연구원)는 북한의 대남정책 기조가 최근 정세변화에 따라 「남조선혁명전략」에서 「평화공존전략」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전인영 교수(서울대)는 『북한이 명분상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정책변화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북한전문가 이즈미 하지메 교수 (이두견원·정강현립대)는 김일성의 금년 신년사 내용에 대해 남북한 2개 정부의 공존가능성을 전제로 한 통일방안이라고 분석, 이는 북한 대남 정책의 중대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견해와는 달리 김남식씨 (평화연구원 연구위원)는 『북한의 대남 정책은 군사문제 우선해결, 통일방도 협의 위한 정치협상회의 실현, 범민족연합을 통한 민족통일전선 형성등 세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면서 『북한의 대남 정책 변화는 부분적』 이라고 분석했다.
◇통일방안=일본의 오코노기마사오(소차목정부·경응대 교수)는 『북한의 연방제통일 주장이 80년10월에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그대로 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새로운 의문이 있으나 북한이 두 체제의 장기적인 공존을 바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이즈미 교수는 올해 김일성 신년사가 ▲2개 정부의 공존 ▲단일제도 형성의 장기적 설정 및 점차적인 방법에 의한 연방제통일 실현 등 「중대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 한국 측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북한전문가들도 올해 김일성 신년사가 통일정책에 탄력성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남식씨는 『올 김일성 신년사는 초기에 지역정부에 권한을 주었다가 점차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해 나가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연방국가 창설이라는 기본 틀만 갖춘다면 지역정부가 외교·국방권한을 분리해 가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전인영 교수도 『북한이 자신의 정책변화를 뒷받침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연방제 통일방안에서 2개의 자치정부가 더 많은 권한 (외교·국방권) 을 갖는 방식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김일성 주석이 최고인민회의 9기2차 회의에서 북한이 처한 경제·통일문제에 관한 새 적응논리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마찬가지로 유석렬 교수도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의 내용을 좀더 구체화하여 수정된 정책내용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고인민회의의 자리를 빌려 정책선회의 운을 떼는 정도로 연설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또 유·전 두 교수는 역시 노선전환이 급격히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며 북한이 점진적으로 변화채비를 갖추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남식씨는 『전례로 보아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의 연설로 새 통일방안을 내놓는 방식은 불가능할 것이며 통일문제 실무자가 「민족통일정치협상 회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관계자는 이 같은 전문가들의 다소 엇갈린 전망 속에서도 5월에 재개될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정책선회를 시도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정책=북한의 유엔정책 변화가능성은 미국무부 정보조사국의 로버트 카린 동북아부장의 동경강연 (3월25일)에서 시사됐었다.
카린은 『북한은 남북한이 2개의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인정, 자신의 유엔정책을 이미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북한이 자신의 기존 유엔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에서 「2개의 한국」의 유엔가입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김남식씨는 북한은 「2개의 조선」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단일의석에 의한 공동 가입안 입장을 계속 되풀이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오는29일 평양에서 열리는 IPU총회에서의 김일성 연설은 이 같은 입장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문제를 거듭 강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석렬 교수는 『북한이 남북한을 각각 지역정부라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게 될 경우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유엔가입 반대의 명분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과 중국의 기권가능성을 들어 『북한이 남북이 유엔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정도로 후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고인민회의 전망=김일성의 79세 생일(15일)을 앞두고 열리는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관측 중에는 북한의 대남·통일정책이 변할 것이라는 전망 외에도 일각에선 김정일이 당총비서를 이어받는 등의 정치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전문가들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총비서를 선출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있다.
즉 북한에서는 대체로 김일성의 생일을 전후한 4월에 전년도 예산결산 및 신년도 예산심의를 최고인민회의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예결산이 주요과제가 될 것이고, 또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부주석·총리 등을 새로 선출하는 「조직문제」를 처리할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북한이 「3자 회담」을 제안했던 84년1월의 최고인민회의와 「남북국회회담」을 제안했던 85년4월의 최고인민회의를 염두에 둔다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대남 제의가 나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최고인민회의가 IPU총회를 앞두고 개최되는 만큼 북한의 정책에 대해 각 국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새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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