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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女王의 통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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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선거 때 검은 돈이 강물처럼 흐르는 정치가 대한민국의 특수한 현상만은 아니었다. 산업혁명 절정기의 영국은 귀족과 자본가, 노동자 세력 사이에 의회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각축이 치열했다. 특히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귀족 계급과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가 출신 정치인들이 19세기 유권자들을 돈으로 매수해 권력을 사는 일은 아주 흔했다고 한다.

1832년 잉글랜드의 스탬퍼드라는 선거구에선 1천명의 유권자 중 8백50명이 후보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영국은 국내적으로 소시민과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확보하려는 차티스트 운동을 일으켜 성공을 거뒀고, 디즈레일리의 보수당과 글래드스턴의 자유당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주고받는 양당제도의 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국부와 군사력은 해외로 뻗어나가 중국 진출, 홍콩 획득, 인도 경략 등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꿈을 실현했다.

빛나는 황금시대의 주역은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년)이었다. 그녀는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원칙을 따름으로써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여기엔 정치 불개입 원칙도 들어 있었다. 정치권은 그녀를 경외했다. 그런 빅토리아 여왕이 1881년 의회 시정연설에서 검은 돈 정치에 대한 분노를 표시했다. "지난해 총선 때 몇몇 지역에서 나타난 부패의 관행은 통탄할 만한(lamentable) 것이었다.

이런 관행을 막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왕의 통탄은 당시 총리였던 글래드스턴과 여야 의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정치권은 스스로 검은 돈과 검은 손을 끊어내는 개혁입법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1883년 세계 최초의 '부패방지법(The Corrupt and Illegal Practices Prevention Act)'은 이렇게 탄생했다.

부패방지법은 자유와 권리의 확대 쪽으로만 치달았던 영국의 근대 정치인들이 투명성과 책임이라는 또 다른 가치에 눈뜨게 했다.

부패방지법은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에 소금 역할을 했다. 정치의 혈관엔 투명한 돈이 흘러야 한다. 한국 정치에 빅토리아 여왕은 없다. 국민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