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서명숙의 인생 하프타임 산티아고 순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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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맹증 남자 만나다

중세풍의 아름다운 돌다리로 유명한 주비리(Zubiri). 피레네에서 나를 구해준 '오리존의 기사들'과 이곳 알베르게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운토로 되돌아간 내가 피레네를 넘었는지 궁금했다고 뛸 듯이 반가워하면서 자기 팀과 저녁식사를 함께하자 했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과 프랑스풍이 강해 '작은 프랑스'로 불리는 퀘벡 사람들이 자연스레 친해져 함께 다니는 모양이었다.

순례자들은 팀을 이루어 오는 경우가 많다. 남편과 부인, 시누이와 올케, 오랜 동네 친구, 처남과 매부, 형제와 자매, 직장 동료, 애인 사이, 고교 동창생,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등. 나 같은 솔로 순례객은 열에 한 둘, 게다가 동양인은 더욱 보기 드문 존재다.

영어로 시작된 대화는 자리가 무르익으면서 리드미컬하고 빠른 프랑스말로 옮겨갔고, 거의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쾌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 끼여 외롭고 서글펐다.

과연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낯선 땅, 낯선 사람들 틈에서. 알베르게로 돌아와 침낭 안으로 파고들었다. 고단해서 녹초가 된 순례자들은 곳곳에서 코를 골아댄다. 한국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맨 먼저 장만했던 고성능 귀마개는 배낭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새벽녘. 침대에서 뒤척이느니 차라리 길을 나서자, 걷다 보면 동이 트겠지. 어둠에 싸인 알베르게를 살짝 빠져나왔다. 예측은 빗나갔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훤해지기는커녕 더 짙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렸다. 시커먼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고, 발밑엔 물이 찰랑거렸다.

후배가 사준 헤드랜턴마저 산티아고로 부쳐버렸기에(나의 단견을 원망하는 수밖에!) 지독한 어둠을 뚫을 방법이 묘연했다. 담배를 끊은 내겐 라이터마저 없다. 더 갈까, 되돌아갈까? 망설이는데 맞은편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람이다!

와락 겁이 났다.

"카미노?" 그쪽에서 팽팽한 정적을 깨고 말을 건네왔다. 순례자냐고 묻는 걸 보면 강도나 치한은 아니겠지. 야광등 불빛에 드러난 그는 등산복 차림의 잘 생긴 청년이었다.

선량해 뵈는 청년, 멕시코에서 온 펠리페(사진)란다. 밤눈이 워낙 어두워 산티아고 사인을 못 찾겠단다. 랜턴은 있지만 야맹증인 남자와 시력은 좋지만 랜턴이 없는 여자. 천생연분이랄 수밖에. 힘을 합쳐 길을 찾기로 했다.

오래지 않아 그가 다리를 아주 심하게 절룩거리는 걸 알아차렸다. 이런 몸으로 800㎞에 도전을? 첫날 피레네를 7시간 만에 넘었는데 그때 무리해서 근육을 다친 것 같단다. '처음 사나흘은 체력의 60~70%만 쓰면서 몸을 적응시킨 뒤 서서히 속도를 내라'는 산악인 선배의 충고대로 하기를 역시 잘했다. 마음은 외로움에 비틀거려도, 두 다리는 갈수록 강건해지고 있으니.

#휴대폰 벨소리 사라지다

시간이 흘러도 해는 나오지 않는다. 비 때문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도 평소엔 아름다웠을 터. 그러나 빗방울 세례를 받은 흙은 콜타르처럼 끈끈해져 걷기에 고약했다. 달라붙는 진흙덩이로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진흙투성이의 산길.들길.숲길.언덕길을 지나면서 '산티아고 사인'을 놓쳐, 오던 자리로 되돌아가기를 서너 차례. 산티아고 사인은 여러 종류다. 노란 화살표, 하양과 빨강 두 겹 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 문양….

언제 어디서 보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산길.들길의 느티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전나무…. 산티아고 사인은 수종(樹種)과 크기를 가리지 않는다. 나무뿐인가. 목장의 출입문, 전신주, 헛간, 허름한 농가 담벼락, 헛간 한 귀퉁이, 번잡한 대도시 네거리의 신호등 맨 밑칸, 빈 들판에 우뚝 솟은 송전탑 한 구석, 개울가에 놓인 징검다리, 발길에 채이는 거리의 돌멩이, 마을로 진입하는 굴다리 교각 밑,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표시판, 무심코 내려다본 땅바닥, 포도밭 이랑과 이랑 사이…. 산티아고 사인은 흐르는 물과 무심한 하늘에만 없다.

표지판은 예상보다도 더 작고 수수했다. 일부러 숨겨 놓았나 싶을 만큼 도시의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빌딩 숲속에서 '나 좀 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커다란 간판과 번쩍거리는 안내판에 익숙해진 눈과 귀는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했다.

몸은 오래된 습관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세포 깊숙이 저장해 두고 있었다. 눈앞에 스페인의 이국적인 풍광이 있건만 마음은 번번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와 두고온 사람들 곁을 서성이고, 두 귀는 한국에 두고 온 휴대전화 벨소리를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산티아고 사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풍경과 사물에 집중하노라니 흩어진 마음은 한곳에, 떠돌던 생각은 '여기'에 머무르게 되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연결되는 플러그를 완전히 뽑아버린 언플러그드 세계에서, 내 몸으로 밀고 나가는 속도만큼 움직이는 아날로그적인 세계에서, 느릿느릿, 평화롭게….

#보행자가 왕이더라

팜플로냐(Pamplona)를 눈앞에 두고, 근육 통증 때문에 쉬어가면 더 고통스럽다는 펠리페를 떠나보냈다. 멕시코시티에서 웹호스팅 업체를 운영하는 젊은 오너 펠리페는 좋은 길동무였다. 그러나 게으른 순례를 원하는 나와 쉬지 않고 걸어야만 하는 그는 함께 갈 수 없었다. 따로, 또 같이. 순례길에선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레 여겨야 한다.

이윽고 팜플로냐다. 여러 작가가 '보석 같은 도시' 팜플로냐에 관한 글을 남겼다. 오래된 성곽, 고풍스러운 수도원, 세월의 축적을 여실히 증거하는 중세풍의 대학, 황소축제가 벌어지는 시내 중심가의 그림처럼 예쁜 가게들, 섬세하게 직조된 다양한 빛깔의 옷감 따위를 예찬하는 ….

나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팜플로냐에 반했다. '보행자 우선'이라는 종잇장에서나 가능한 구호가 철저하게 실현된다는 점. 수도원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고 시내 곳곳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숱하게 만났다. 운전자들은 초록불이든 빨간불이든 신호등의 색깔과 무관하게 보행자가 눈에 띄기만 하면 일단 멈춰섰다. 그러곤 보행자가 지나갈 때까지 끈덕지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길은 오로지 자동차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면서 횡단보도 신호가 채 바뀌기도 전에 보행자를 깔아뭉갤 듯 밀어붙이는 자동차 권력에 길들여진, 속도가 지배하는 자동차 왕국에서 철저하게 복종과 순응을 강요당해온 신민(臣民)으로서는 불편하고 황송하기 그지없는 시추에이션이었다. 걷기의 자유로움과 느긋함을 도시 안에서 누리고 만끽하는 건 멋진 일이었다.

되찾은 보행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알베르게에 돌아와 보니 순례자 수십 명에 부엌의 가스불은 달랑 두 개.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값싼 생토마토를 양껏 넣은 스파게티를 만들고 2유로(2600원)짜리 포도주 한 병을 곁들여 나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디저트는? 달콤쌉싸름한 고독감!!

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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