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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낸 "아웃사이더" 박남철·김영승 시인|"「사람 사는 세상」에 편입할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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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 시대 마지막 아웃사이더로 남아있던 시인 박남철(38)·김영승(32)씨가 나란히 시집을 펴냈다.
기존 시, 혹은 사회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흩뜨려 놓아 80년대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씨는 『러·시·아·집·패·설』(청하간)을, 김씨는 『아름다운 폐인』(미학사간)을 각각 펴냈다.
79년 『문학과 지성』에 처음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박씨와 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나온 김씨는 거침없는 독설·욕설 등을 시에 도입, 기존의 시가 갖는 엄숙함을 깨뜨리며 사회, 혹은 자신의 거짓스러움을 생째로 드러내 시단의 화제를 불러냈다.
시와 세계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는 아픔 위에다 그들의 시 세계를 세웠던 박씨와 김씨. 기존의 모든 틀밖에 있었던 그들은 전혀 다르게 사랑, 혹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꿈꾸며 새 시집을 펴냈다.
김씨는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 때문에 오로지 시만이 삶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 이 시대 희귀한 데카당 시인이다. 첫 시집 『반성』에서 속된 삶·정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일상적 삶을 가차없이 반성하게 하고, 또 구체적 성적 묘사·욕설 등으로 외설경고까지 받았던 김씨가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이 찧고 까불었던 세상 그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노래하고 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살다보니 시도 삶도 건강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일어나 바삐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이제 세상에 편입돼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걱정한번 안해 봤다는 김씨. 그래서 가난에 철저히 시달려야 했다는 그는 술값 독촉, 빚 독촉에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생활엔 철저하게 무능한 시인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손벌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면서도 김씨는 세상을 철저하게 야유해 왔다.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든 개인의 실존적 상황에 의해서든 80년대 시인들은 너무 오도방정을 떨었어요. 자신의 진정한 삶·사고가 아닌 것으로 자신을 치장, 가장된 언어를 팔아먹고 산것이 80년대 시인들이었어요.』 그는 시인은 정신적으로 강자이기 때문에 권력 등 속세를 내려다봐야 하는데 그러한 속세를 풍자하고 야유하는 것 자체가 시인의 격을 떨어뜨렸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도 그러한 80년대 시인대열에 끼어 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 김씨는 이제 자연·생명·우주·신·여체등 세상의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찬양」이라는 장시를 써보겠다고 한다.
속된말을 마구 쓰고 띄어쓰기를 무시하는가 하면 활자를 거꾸로 박는 실험적·파괴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모든 질서를 부수며 소위 「해체시」를 열었던 박씨도 이번 시집에서는 반전하여 세상을 껴안으려는 자세를 드러낸다. 시만 쓰려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까지 내고 방황하다 다시 「빵」이 그리워 야간고교 교사로 복직한 박씨는 이제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다.
『그 동안은 세상을 비판하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좀 감싸안으렵니다. 비판은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 방관자의 입장 아닙니까.』
전위적인 방법으로 파괴하고 부정하다보니 어느틈엔가 나이 40을 바라보게 됐다는 박씨는 이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나이에 걸 맞는 삶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한다.
『내 시는 이제 내 아들·내 아내·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민중을 구원하겠다는 친구들, 대 사회적 진실과 내면적 진실이 어긋나는 시들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사회적 진실·민중만을 나불대다 거꾸러진 시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민중도 없고 시도 없고 오로지 있는 것은 삶 자체뿐이라는 박씨. 때문에 시는 자신의 진정한 삶의 기록일 때 시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박씨는 이제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한다. 금씨 또한 백수건달 노릇을 청산하고 아내와의 삶을 꾸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려한다. 기존 질서의 아웃사이더로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이 두 시인의 사회편입선언은 그러나 무언가 아쉬움을 준다. 방랑자·폭력아·무능자·주정뱅이 등 「천성적 시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언어들이 이제 영영 우리문단에서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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