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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진 미­일관계 진화나들이/일 총리 방미 발걸음 왜 무겁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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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의 반일감정 무마에 안간힘/일선 이 기회에 「안보독립」여론
『최근의 역대 일본 총리중 이번 가이후(해부) 총리의 방미만큼 서글픈 여행은 없었다』고 3일 가이후 총리의 한 측근은 말했다.
가이후 총리는 4일(미국시간) 미 수도 워싱턴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뉴포트비치에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에 들어간다.
동경은 걸프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걸프전쟁으로 미국은 승전분위기 일색인데 반해 미 전쟁수행의 든든한 「자금줄」역할을 맡았던 일본은 대미 신경과민현상의 후유증을 앓아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다국적군에 대해 총 1백30억달러(한화 약 9조3천6백억원)의 지원금을 지급,또는 약속해놓고 있으나 그동안 이 전쟁수행 및 종전처리를 놓고 진행돼온 국제협의 과정에서 너무나 미약한 발언권을 허용받고 있는데 대해 실망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같은 분위기에서 특히 일측 요구로 이루어지는 점이 주목된다.
걸프전쟁에서 일본이 경제대국이며 서방동맹국의 일원이면서도 『단 한나라 피를 흘리지 않은 나라』로 지목되는 것에 일본 정부당국자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가이후 총리로서는 이번 부시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걸프전쟁 이전에 「부시폰」(부시와의 직접통화)으로 통칭될 만큼 돈독했던 개인적 친분관계를 재확인하면서 걸프전쟁 이후 미국내 여론이 「일본 두드리기」쪽으로 쏠리고 있는 풍향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달 나카야마(중산) 외상과의 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대일 불만은 무역문제」에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바 있다.
또 지난 3월12일 일본 국제식품 음료전시장에서 미국산 쌀 전시를 못하게 한 일본 조치에 대해 미 정부가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한 것은 앞으로의 대미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리라고 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우려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한 「자격지심」이 한편으로는 이번 계기에 미국과의 안보조약을 파기하고 독립국가로서 재출발하자는 반미 감정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어 「진주만공격 50주년」을 맞는 일본 당국으로서는 이같은 감정마찰이 가져올지도 모를 파국까지도 염두에 둬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한 관리소식통이 이와 관련 『미국내에서 대일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안에서는 걸프전쟁에서 90억달러의 재정지원,미일 구조협의에서 일본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대미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쌍방 모두 좋지않은 일로 발전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는 것은 저간의 미일 마찰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때문에 가이후 총리는 조기방미를 통해 미일관계를 종전의 「혈맹관계」는 아니더라는 「전후 세계질서를 같이 조정해가야 할 동반관계」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인식시킬 필요가 생긴 셈이다.
한편으로 가이후 총리 자신의 정치생명에 자칫 오는 7일 치러질 동경도지사선거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조기방미를 서두르게 한 원인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현재 종반전에 들어선 지사선거는 여론조사결과 스즈키(영목) 현지사가 가이후­오자와 등 자민당 집행부가 추천한 이소무라(기촌) 후보를 크게 누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선거 이후 가이후 책임퇴진론이 대두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가이후 총리로서는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미일 관계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해결사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최소한 10월 총재선거까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방미 일정을 당초 『선거전에 미국에 간다고 해도 쌀시장 개방문제나 자위대 소해정 파견 등 유엔 평화유지활동 참가문제에 분명한 언질을 하기 힘들다』고 판단,지사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제안했으나 총리관저측의 조기방문 관철로 낙착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총리의 방미는 이달 중순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방일,가이후의 5월 동남아시아제국연합(ASEAN) 순방,7월 선진공업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총리」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판단한 듯 하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처럼 취약한 입장의 가이후에게 대일 우호관계를 재확인해주는 대신 미일 무역구조개선,쌀시장의 부분적 개방,세계 새질서구축에 대한 미국 동맹국으로서의 확실한 입장표명을 요구할게 분명하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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