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재산 민영화 책임자/로베더 암살로 정가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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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건재과시 위한 적군파 소행
구동독 국유재산의 민영화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신탁관리청(트로이한트 안슈탈트)의 데틀레프 로베더 청장(58)이 1일 밤 극좌테러조직 적군파(RAF)의 한 괴한에게 암살돼 독일정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독일 검찰과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적군파의 한 부대인 울리히 베셀파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쪽지를 남긴데다,사건직후 파리 AFP통신사에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온 점,그리고 이날 사용된 무기가 지난 2월13일 본주재 미 대사관 피격때 사용된 것과 같은 점 등에 비추어 일단 적군파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울리히 베셀파는 75년 스웨덴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자폭했던 적군파 행동대원 울리히 베셀의 이름을 딴 적군파의 한 계파로 알려졌다.
적군파가 로베더 청장을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자신들을 비호해주던 구동독 정권의 붕괴로 지난해 6월 동독에 은신하고 있던 행동대원 8명이 체포되는 등 존립 위기에 몰리자 자신들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즉 구동독 주민은 물론 야당으로부터도 비난받고 있는 로베더 청장을 암살함으로써 자신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어느 정도 합리화시키는 동시에 선전효과의 극대화를 꾀했다는 분석이다.
독일 적군파는 70년 결성된 바더­마인호프그룹에서 파생돼 나온 극좌테러단체로 현재 15∼20명의 핵심인물이 30∼50명의 행동대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군산복합체의 대리인」으로 부르는 약 2백50명의 독일 정재계 요인들을 암살목표로 삼고있다. 이들에 의한 최근의 테러는 89년 11월30일 도이치은행의 헤르하우젠 총재를 암살한 것이다.
이번에 암살된 로베더 청장은 1932년 동부 독일 고타에서 출생한 법학박사 출신으로 독일 정·재계의 거물이었다.
69∼78년 사민당정권하에서 경제부차관을 역임했고 79년엔 위기에 처한 획스트그룹에 회장으로 취임,88년 이 그룹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던 유능한 경영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동서독 경제통합과 함께 발족한 신탁관리청장에 취임했다.
신탁관리청은 그간 8천여개의 구동독 국영기업중 7백여개를 민영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구동독 국민들은 그가 민영화를 너무 완만히 추진,기업이 대량 도산하고 실업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대해 로베더 청장은 『기업의 민영화도 신탁관리청의 임무지만 생존가능한 기업은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며 이에 맞서왔다.
그러나 그는 최근 민영화,즉 서쪽기업들의 대상기업인수가 지지부진하자 구동독 5개주 주요도시에 15개의 분청을 설치하고 직원도 늘리는 등 기구를 확대개편,민영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표시했다.
그의 죽음에도 불구,신탁관리청은 로베더의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고 브로이엘 부청장이 밝히고 있어 구동독 기업의 민영화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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