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국정원도 벤치마킹한 재보험사 '코리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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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재보험사인 코리안리 박종원(사진) 사장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파산 위기에서 우량기업으로 부활한 코리안리 사례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위기극복 사례 대상으로 코리안리를 꼽은 이유는 뭘까.

코리안리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월까지만 해도 당기순손실이 2800억원에 달해 파산을 코앞에 둔 회사였다. 하지만 98년 이후 연평균 13%씩 성장하며 아시아 1위, 세계 13위의 재보험사로 거듭났다. 98년 953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시가총액은 현재 1조4216억원(26일 종가 기준)으로 14배가량 커졌다. 당시 웬만한 금융회사마다 받았던 그 흔한 공적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도전과 경쟁, 새 기업문화 도입이 열쇠였다.

◆망해 가던 '온실 속 화초'=코리안리의 전신은 63년 국영으로 설립된 대한손해재보험공사다. 78년 민영회사인 대한재보험으로 전환했지만 독점적인 사업권을 누리면서 '온실 속 화초'처럼 지냈다. 경쟁은 아예 생각도 안 했던 시절이다. 박 사장은 "직원들은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열의도 경쟁심도 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받자는 식이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시장의 압력이 밀어닥쳤다. 80년대 중반부터 금융개방이 시작돼 90년대 중반엔 재보험 시장이 완전히 열렸다. 변화에 둔감했던 이 회사의 영업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다. 손쉬운 회사채보증보험의 재보험(보증보험이 특정 회사의 회사채에 대해 보증하면서 일정 부분을 다시 재보험 드는 것) 규모만 늘어났다. 98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기업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은 이 회사도 퇴출 위기에 빠졌다. 98년에만 회사채보증보험 부문에서 3800억원의 손실이 생겼다.

◆'경쟁 문화로 회사 살려'="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 문화가 기업을 이끈다." 98년 7월 재정경제부 이사관에서 코리안리 대표로 부임한 박 사장은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경쟁적인 기업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먼저 구조조정에 나섰다. 282명의 전체 인원을 197명으로 30% 줄였다. 과장 이상 간부 직원 두 명 중 한 명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전임 노조위원장도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박 사장은 "이로 인해 연간 45억원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었지만 더 큰 효과는 달라진 기업문화였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이후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세는 적극적으로, 업무에 대한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경쟁과 열정, 도전의 기업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업문화의 변화는 영업실적으로 이어졌다. 새 상품이 잇따라 개발됐고 해외 영업 실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98년 5000만 달러던 해외 매출이 올해는 4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한 사람의 직원도 골라 뽑는다=올 11월 24명을 뽑는 신입사원 모집에 1031명이 몰렸다. 신입사원 연봉이 4000만원 수준으로 한국 기업 중 1~2위 수준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런 만큼 직원도 까다롭게 뽑는다. 일단 같은 대학교 출신의 선배가 신입사원의 지원서류를 1차 평가한다. 같은 대학 출신이 지원자의 동아리 활동 등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다음 사장, 인사담당 임원, 인사부장과 함께 노조위원장, 1년차 직원 대표, 대리급 직원 대표가 1차 실내면접을 한다. 2차 면접은 산행.축구.저녁식사를 통해 심층 면접을 한다. 박 사장은 "축구에서는 개인기보다는 협동정신과 성실성을, 저녁 자리에서는 음주예절과 사회성을 눈여겨본다"고 말했다.

코리안리 전 직원은 도전정신과 협동심을 구축하기 위해 205㎞의 백두대간 코스를 20~40㎞씩 나눠 종주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3년째다.

김창규 기자

◆재보험=보험회사가 인수한 계약의 일부를 다른 보험회사가 재차 인수하는 것으로 '보험회사를 위한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이 개인이나 기업이 불의의 사고로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 주는 제도인 데 비해 재보험은 보험회사의 보상 책임을 분담해 주는 제도다. 보통 보험사는 대형 보험계약을 인수한 다음 위험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스스로 부담할 수 있는 책임한도액을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위험은 재보험회사와 계약해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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