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호응에 행정 발맞춰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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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준비없이 서두른 쓰레기 분리수거
모처럼 시작된 쓰레기 분리수거가 행정쪽의 준비부족으로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다가는 주민들의 협조분위기도 점차 사그라들어 어렵게 시작된 분리수거제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제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주민들의 협조정신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필요한 일이긴 하나 당장은 귀찮고 번거로운 점이 많은 일이다. 따라서 먼저 주민들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당장의 불편을 참아낼 각오가 서지 않으면 안된다. 쓰레기 분리수거문제가 제기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서야 실시를 하게 된 것도 다른 준비도 준비지만 이런 주민의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던데 큰 원인이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매스컴과 시민단체 등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해와 비로소 그것이 별다른 반발없이 실시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정작 행정쪽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해 주민들의 의욕을 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을 가장 맥빠지게 하고 있는 것은 귀찮으면서도 애써 나눈 쓰레기가 막상 수거때는 도로 합쳐져 버리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수거작업이 다소 편해질뿐 분리수거제의 실시목적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반대여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이 거꾸로 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런 일은 행정이 사전준비를 완벽히 해놓고 그 다음에 주민들의 협조를 구했어야 했을 일이다.
준비에 시일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준비가 끝날 때까지 그 실시를 미뤘어야 했다. 행정적 준비는 제대로 안한채 주민들에게 의무만 강요했으니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욕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쓰레기 분리수거제가 시작된 이상 이제 와서 도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해서는 결코 안된다.
일의 선후가 뒤바뀌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당국은 주민의 인식과 호응에 서둘러 발을 맞추어야 한다. 소각시설 마련,재활용시설 확충,분리수거체계의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도 현재의 계획보다 앞당겨야 하겠지만 우선 급한대로 주민들의 반발이 확산되지 않게 할 응급대책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가령 아파트지역의 경우는 분리수거 쓰레기통의 용량부족으로 인해 주위가 지저분해지고 있다. 여름이 되면 파리도 들끓는등 위생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들이다. 먼저 해결이 손쉬운 이런 문제들부터 해결해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협조분위기를 유지해나가야 한다. 쓰레기분리가 당장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대신 다른 이점이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눈으로 확인해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아울러 당국은 거듭해서 시민들에게 번거로운 부담을 지우는 일을 피해야 한다.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생활상의 불편이 가중되면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30일 환경처는 오는 7월부터 헌 가전제품 등을 버릴 때는 미리 시·군에 연락해 수거날짜를 지정받게 하는등 여러가지 주민들이 해야할 사항을 발표했는데 이는 너무도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다.
행정당국이 미리 수거일을 정해 주민들에게 알려줄 일이지 주민들이 먼저 신고하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이지만 당국은 모든 일을 주민의 입장에 서서 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협조와 참여가 가능해질 것이다.
시민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가장 큰 과제의 하나는 시민들이 도시생활에 필요한 관행과 규칙을 체득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의 선도적 역할이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완성될 수 밖에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쓰레기 분리수거제의 경우도 일의 순서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기왕 시작한 마당에 시민들이 지속적인 호응을 보여 오히려 행정을 채찍질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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