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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재활사업에 팔 걷어붙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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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지내기는 여름이 낫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난방비나 김장 같은, 목돈 들어갈 일이 많은 겨울철은 더욱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자선냄비와 산타클로스도 겨울에 등장하는가 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동안 잊었던 주위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한번쯤 자선과 나눔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아파트에서 자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추워지면 집집마다 연탄이 가장 중요한 월동 준비 중 하나였습니다. 광이 꽉 차도록 연탄을 들여놓고 나면 부모님은 그렇게 뿌듯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의 텅 빈 연탄광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말입니다.

다른 곳에도 그렇지만 올해 푸르메재단에는 따뜻한 손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박봉을 쪼개 월급 일부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기업들도 장애인 환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결코 넉넉하지 않은 분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려는 기부 행렬이 크게 늘어 반가웠습니다.

5월에 황혜경씨가 영국에서 당한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의 절반인 10억원을 재활전문병원을 짓는 데 써 달라고 기부한 것이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 소식에 노후자금으로 쓰려고 간직해 두었던 3억원 상당의 토지를 선뜻 기증해 주신 이재식씨 부부, 올해 장애극복상으로 받은 수상금을 기부한 강지훈씨, 힘들여 번 돈 1000만원을 기부하고 유학을 떠나면서 꼭 필요한 곳에 기부하게 돼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던 이현아씨까지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분들인지요.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춥지만은 않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만원, 2만원 용돈을 아껴 꾸준히 기부해 주고 계신 분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소중한 마음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기업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기업마다 수익 일부분을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형식적이었던 기업도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조금씩 장기적인 도움을 주는 데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저소득 장애인과 장애인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미약합니다. 연말이 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대기업 기금이 몰리지만 가장 도움이 절실한 장애인 시설은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금이 크게 감면되고 생색이 나는 곳에 지원하려고 몰려듭니다.

가난.질병의 이중 고통을 겪고 있는 장애 환자들이 가장 춥고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140만 명이 넘는 이들은 우리 사회로부터 잊혀진 존재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대기업.공기업이 장애인 재활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합니다. 서울시.경기도와 같은 지자체가 저소득 장애환자들이 재활을 꿈꿀 수 있는 병원 부지를 제공하고 중앙정부.기업.사회단체가 이들을 돕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올 겨울은 따뜻한 온기가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퍼져 나가 누구보다도 장애 환자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성공회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