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문제는 바로 '돈'이다. 패션이 점차 산업화되면서 "'화려하고 돈이 많이 드는 패션쇼'는 돈 많은 패션 그룹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에게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파리나 밀라노의 해외 유명 컬렉션의 패션쇼 장 맨 앞줄의 풍경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곳에 새롭게 자리 잡은 것은 점잖은 검은색 정장의 남성들. 자금을 대는 펀드나 회사의 간부들이다. 예전에는 이 자리가 걸출한 명성의 패션 비평가와 전문지의 에디터, 당대의 패션 리더들의 차지였었다.
둘째 이유는 바로 H&M이나 자라(Zara) 같은 브랜드로 대표되는'패스트 패션'이다. 이들 브랜드는 시즌마다 새로운 유행 상품을 저가로 대량 공급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멘키스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의 재능을 빨아먹는 흡혈귀는 아니다"면서도 "디자이너 스스로가 (엄청난 예산과 인력이 있는 패션 회사를) 기꺼이 반기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화적 환경'을 꼽았다. 그가 말한 환경이란 바로 패션에서도 민주화가 진행된 20세기다. 이전의 옷은 사회적인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했지만 '민주화된 옷'은 단순히 옷으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특정 브랜드와 로고가 보여 주는 모습만 남았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이너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
그렇다면 종국에는 패션이 사라지는 것일까. 수지 멘키스는 "단지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번 패션을 이끌어 갈 브랜드는 혹시 가상공간(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세워질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강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