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토왕폭 첫 여성 등정|알피니스트 이현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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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그저 산이 좋아 오르는 알피니스트일뿐이지요』
「빙벽 등반의 여성 제1인자」라는 칭찬이 겸연쩍은 듯 이현옥씨 (이현옥·27·청맥 산악회) 는 못내 겸손해 한다.
이씨는 지난달 14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높이 3백40여m의 얼음 기둥인 설악산 토왕폭을 장장 7시간여에 걸친 사투 끝에 선등 (선등) 하는데 성공, 기세를 떨쳤다.
선등은 남의 뒤를 쫓아 오르는 후등과는 달리 아차 실수가 곧 죽음이기 십상인 긴장된 위험의 연속.
하루 등정에 체중이 무려 3kg정도나 빠지는 고통이 따르지만 정상 정복을 향한 이씨의 욕심은 좀처럼 멈추질 않는다.
이씨는 최초의 토왕폭 여성 선등자란 기록을 세운 열흘뒤인 24일엔 선배 남난희씨(남난희·35)와 짝을 이뤄 여성들만의 토왕폭 등정이란 또 다른 기록을 엮어냈다.
기록을 염두에 둔바 없지만 이씨의 이 같은 올초 맹활약은 산악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씨의 본격적인 빙벽 등반이 88년부터여서 이제 3년여의 경력에 불과한 것이다.
산악인들이 거침없이 그녀를 여성 제1의 알피니스트로 꼽는 것도 빠른 그녀의 성장속도가 보여준 가능성 때문이다.
여고 시절부터 혼자 떠나는 여행이 취미일 정도로 다소 내성적이었던 이씨가 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고교 졸업후인 84년.
주말이면 관악산·도봉산·북한산 등 서울 근교의 산행에 나섰다가 『마치 요람 속에 든 것처럼 아늑한 산의 품안에 빠져들고 말았다』 는 얘기다.
이씨는 빙벽 등반가로서의 이름이 더 나있지만 암벽 등반 실력도 이에 못지 않다.
지난1월엔 토왕폭 등정에 앞서 일본으로 날아가 조가사키 해안의 암벽 등반을 하고 돌아온 열성파.
암벽 등반이 유연성과 균형성을 중요시하는 반면 빙벽 등반은 강인한 지구력과 완력이 절대적이다.
이씨는 암벽 등반도 즐기지만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빙벽 등정을 선호한다.
동료 여성 산악인들과의 팔씨름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이씨의 완력으로 보아도 빙벽 등반이 제격인 셈.
미혼인 이씨는 이제 산악인의 꿈인 히말라야 등반을 넘보고 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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