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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원로 정의채 몬시뇰의 '성탄 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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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천주교 원로 정의채(81.서강대 석좌교수) 몬시뇰(고위 성직자)이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평통 자문회의 상임위' 연설을 비판했다.

정 몬시뇰은 24일 중앙일보에 보낸 e-메일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21일 발언은 나라를 온통 침울의 도가니로 몰아갔다"며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연말에 대통령이란 분이 그런 막말로 국민을 짓밟아야 했을까"라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21일 연설에서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의 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규정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

정 몬시뇰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성탄절을 맞아 천주교 원로로서 이런 아픈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노 정부 초기에는 희망을 가졌으나 이번에 대통령의 언동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몬시뇰이 노 대통령에 띄우는 '고언'(苦言)의 요약.

◆ 겸양과 덕치(德治)를 갖춰야=우리의 전통에는 국민의 삶이 고달파질 때, 국난이 겹칠 때 "먼저 짐(朕.통치자)의 부덕으로"라며 누구의 잘잘못을 묻기 전에 (국왕이)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는 겸양과 덕치가 있었다.

대통령의 말투와 자세는 민주 시민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국가의 핵심 원리인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 10%도 안 되는 민의 찬성을 등에 업고 "민의(民意)는 나를 따라오라! 아니면 다 잘못된 것이다"라는 식의 대통령상을 상정시키기에 충분했다.

(2004년) 노 대통령이 탄핵을 모면한 뒤 얼마 안 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 때 "노무현 대통령, 우리 대통령 맞아?"라는 말이 어느 날 국민 사이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날이 바로 21일이 아닐까.

◆ '패거리 대통령' 경계를=남은 (노 대통령의 임기) 1년간 국민이 더 이상 손해를 입지 않도록 지혜와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현재의 통치 스타일을 유지하면 법적으로는 대통령이나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패거리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현 정권이 줄기차게 내세운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쓸데없는 말장난이다. 더 자유롭고 더 잘살게 되는 것만이 정치에 대한 국민의 한결같은 염원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이념은 노 대통령이 즐겨 쓰는 대로 이른바 역사박물관에 깨끗이 집어넣자.

대한민국은 정진(精進)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경제 10대 강국을 넘보게 됐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뛰어들어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모델을 만들자. 온 국민이 정신을 가다듬고 희망찬 새해를 열어가자.

박정호 기자

◆ 정의채 몬시뇰=노무현 정부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해 온 한국 천주교의 원로다. 몬시뇰은 교구(敎區)가 없거나, 주교품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덕망이 높은 성직자를 가리키는 칭호다. 1953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명동성당 주임신부와 가톨릭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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