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여당 386은 권력에 맛들인 아르마니 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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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라는 동물원엔 돼지도, 개도, 하이에나도 있다. 안타까운 건 꿈틀거리는 용같은 멋진 동물은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새 책 '폭풍전야(전 2권)'가 입방아에 올랐다. 초선의원 전여옥의 2년 반 '체험, 정치 현장'을 담았다. 강골로 소문난 전 의원. 그런데도 녹록지 않은 초선의원의 신고식 흔적이 엿보인다.

'강하다' '담금질' '싸웠다' '지켰다'같은 공격. 방어 동사가 여러번 쓰였다. 정치판을 '배신과 배덕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종격투기장'에 빗댔다. 사례와 주인공도 등장한다. 표리부동층은 이니셜로 노출했다. "조용히 살고 싶었다"며 서문을 열지만 문체는 전여옥 답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진에겐 "메이저 입성하고도 영원히 마이너 근성을 못 벗는 아마추어들"이라고 했다. 386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권력과 돈에 맛들인 '아르마니 좌파'"라고 했다. 한나라당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용각산 정당.웰빙 정당.무지개 정당"이라는 말로 한나라당의 '몸사림'과 정체성 혼란을 비판했다. 당내 소장파에겐 "말이 소장파지 40을 넘긴 중년들이 젊음을 팔려 했다"며 "열린우리당 지방캠퍼스 학생 꼴"이라고 성토했다. '화끈한 것'을 기대하며 정치판 혈투를 관전하는 언론도 일갈했다. "링 둘레에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앉아있다"고 썼다.

비판과 폭로 뒤론 시스터 후드(여성간의 의리)의 코드도 읽힌다. 남성들의 영역, 정치판에서 분투하는 여성 정치인의 답답증이 드러난다. "수도자 같은 정치인이다" 사방을 성토하면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선 존경과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내 인생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등에는 아직도 칼날이 긁고 지나간 상처가 남아 있다"는 전 의원. '거슬리는 진실'이 담긴 이 책은 그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3권도 낸단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전여옥 의원, 이 책 왜 쓰셨어요?"

- 왜 썼나.

"정치권 입문 후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에 크게 시달렸다. 극복해야 했다. 뭔가 생산하고 성과를 내는 게 극복법이라 여겼다. 바빠서 글 쓸 짬이 없다 생각했는데,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그 날부터 틈틈이 썼다. 정치권에 입문한 성장통의 결과다. 1년 반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단권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2권이 됐다."

- 항의 받을 수 있는 내용도 있는데.

"이니셜로 공개한 의원은 누구도 자신이 그 표리부동한 의원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정치판엔 그 의원이 있는데, 책 밖에 실체가 없다는 게 문제다. 아마 그 누구도 이니셜 처리된 내용을 들어 비판이나 항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나다', 증명하는 셈이니까."

- 두루두루 진정성을 비판했다. 전여옥은 당당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던 순간부터 진정성을 갖고 뛰어들었다. 2년여 정치 여정이 진정성 그대로다.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초선 비례대표인 내가 기적같이 최고위원이 된 것도 진정성을 믿고 확인해준 당원들 덕분이었다."

- 박근혜만 칭찬했다. 공정한 시선인가.

"사실 그대로 썼을 뿐이다. 실제로 정말 헌신적이다. 당을 위해 언제나 희생한다. 사심없이 그렇게 많은 이를 돕는 정치인은 드물다. 이명박 전 시장.손학규 전 지사 그리고 박 전 대표 모두 누가 대통령이 돼도 손색없는 분들이다. 한나라당의 자산이다. 박 전 대표는 훌륭한 여성지도자다. '친박'은 밖에서 지어낸 말일 뿐이다. 난 친대한민국 친한나라당 의원이다"

- 대선 앞, 출간 시점에 의도가 있는 건가.

"누군가 그렇게 본다면 쪼잔한 거다. 물론 난 여성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괜한 추측은 도량을 좁히는 일이다. 우린 모두 한나라당이다."

- 여성성을 무기삼는 동료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시대는 여성성 활용을 말하는데. 박근혜도 그렇지 않나.

"내가 '색(色)'을 쓴다고 표현한 여성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는 여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성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수를 부리지 않고 독자적인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얼마나 멋진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남성의 아류에 그친다."

- 시스터후드(여성들간의 의리)가 읽힌다.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건 일부분이다. 난 나아가 휴먼후드를 말하고 싶었다. 난폭한 정치판, 남성들의 영역을 신뢰에 바탕 둔 인간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 전여옥의 정치 목표는.

"정치 목표는 대선승리다. 사심은 없다. 지면 그 날로 그만둔다. 이기면 다음 총선에도 나가볼 생각이다. 난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게 참 좋다. 내각 입성? 그런 건 지금 생각할 일이 아니다. 대선에나 이기고 거론할 얘기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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