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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탄'과 '활인심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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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 대통령의 입은 가위 판도라 상자다. 입만 열었다 하면 온갖 시비와 불화의 근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민이 받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엊그제 또다시 말의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동안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싶은 국민의 방탄 조끼마저 뚫어낼 만큼 강하고 독한 '언탄(言彈)'이었다. 세밑에 꼭 이렇게 평지풍파를 일으켜 소란을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은 "나는 제정신"이라고 주먹 불끈 쥐고 외쳤지만 국민적 상식에서 보면 되레 그 반대가 아닐까 싶은 의심만 키웠다.

솔직히 노 대통령이 쏟아낸 말들에 일일이 대꾸하며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미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노 대통령의 말 때문에 더 도진 국민의 화병을 가라앉힐 방도나 찾아봄이 나을 듯하다.

다행히 조선조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화기환(和氣丸)'이란 처방이 있다. 활인심방이란 '마음을 다스려 사람을 살리는 비방'이다. 그중 으뜸 처방이 화기환이다. 이것은 약초를 구해 말려서 빻고 다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참을 인(忍)'자를 쓰는 것이 전부다. 참는다는 것은 마음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칼로 도려내듯 아예 끊는 것이다.

사실 퇴계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산 사람도 드물다. 퇴계는 첫 부인 허씨가 둘째 아들을 낳은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떴고, 둘째 부인 권씨는 마흔여섯 되던 해에 세상을 등졌다.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 중 으뜸이 배우자를 잃는 것이라고 하는데 퇴계는 남들의 갑절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스트레스를 받은 셈이다. 게다가 둘째 부인은 살아서도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하루는 퇴계가 부인에게 헤진 도포를 기워 달라고 하자 둘째 부인 권씨는 흰 도포 위에 붉은 헝겊을 대고 기워 주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명색이 조선 최고의 도학자였던 퇴계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아무 말 없이 그 도포를 입고 외출했다고 한다. 아마도 벽에 붙여둔 '인'자를 쳐다보며 호흡 크게 한 뒤 마음에서 그 일을 지웠을 것이다. 그렇게 한 덕분인지 퇴계는 당시로선 드물게 70세까지 장수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도 매일 아침 화기환 한 알을 복용해야 온전히 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입만 열면 소란해지는 노 대통령에게는 '중화탕(中和湯)'을 지어 올려야 할 것 같다. 약탕기를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다. 중화탕은 약탕기에 다려서 우려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 담아 우려내는 '마음의 탕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중화탕의 약재는 '계노(戒怒)' '계폭(戒暴)' '겸화(謙和)'다. 즉 분노함을 삼가고, 난폭하게 성냄을 경계하며, 겸손하게 두루 화목하라는 것이다.

자고로 사람을 가장 아프게 상처 내는 것은 칼이나 총이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 즉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으뜸도 '언사시(言辭施)'다. 즉 좋은 말로 베풀라는 것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한 해 동안 국민 노릇 하느라 죽도록 고생한 사람들에게 세밑에 덕담을 베풀진 못할망정 날선 말과 언탄 세례로 상처를 줘서야 쓰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