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새콤달콤책읽기] 사랑, 소설 같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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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사랑도! 두 존재를 분리시키기 힘들 만큼 오래 사랑해온 사람이 어느 날 불현듯 이런 고백을 해온다면?

"정말 당신을 사랑했어. 내가 지금 옛날의 그 소녀가 아니라서 미안해."

그 문장들이 잔인한 것은, 사랑은 과거형으로 사과는 현재형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자고,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글쎄. 사랑에 관한 한 어불성설이다. 변해버린 사랑만큼 비정한 건 없으니까. 배신당하는 사람은 입술을 깨물지만, 배신하는 사람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것. 그것이 사랑의 이기적인 속성이다.

카미유 로망스의 새 소설 '사랑, 소설 같은 이야기'(송의경 옮김, 문학동네)는 여러 모로 문제적이다.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정의 뒷면을 가차 없이 드러내기 위해 작가 본인의 경험과 조상들의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냈다는 점에서 그렇고,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법적 시비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설 속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작가의 남편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 책의 판매금지와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결과는 어땠을까. 프랑스 법정은 "우리는 현실과 문학 중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 우리의 삶 자체에 이미 소설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는 말과 함께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내가 이 재판의 배심원이었다면 어땠을까. 문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작가가 이기적이었다는 데 조심스레 한 표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다른 작가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이걸 확 실명소설로 써 버려?'라는 유혹에 흔들려도 꿋꿋이 참는 이유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고의든 아니든) 타인의 영혼을 짓누르는 폭력을 자행해선 안 된다는 신념과 대전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므로.

그러나 텍스트를 둘러싼 소동만으로 이 소설에 어떤 편견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소설의 한 축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것은 17세기 고전작가 라로슈푸코의 흔적들이다. "우리는 우리와 관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사랑할 수 없다" 또는 "처음 순간에도 여러 해가 지났을 때처럼 서로를 볼 수 있었다면 대체 누가 사랑에 빠지겠는가" 같은 과거의 잠언들이 후대의 작가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나는 장면들이 유리조각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개인적이고 고독한 것, 스스로의 받아쓰기만을 용인하는 제스처, 어느 누구에게도 대신 받아쓰게 해서는 안 되는 것." 글쓰기와 사랑, 두 가지를 동시에 은유하는 표현을 읽으면서, 어쩌면 사적인 불행을 감내하면서까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랑과 글쓰기, 삶과 문학은 결국 별개가 아니라는 것. 그것을 통해 '나'에게조차 숨겨져 있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찾고 싶다는 열망. 가혹하고 처절한 만큼 아름다운 미혹이다.

정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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