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리더와의 대화] 1. 보시라이 랴오닝 省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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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국은 블랙홀이다. 주위의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이며 성장 페달을 한층 더 세게 밟고 있다. 그러나 심연에 도사린 문제의 깊이 또한 끝을 알기 어렵다.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전문 경제관료 30년의 정덕구(鄭德龜.55)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함께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핵심 포스트인 성(省)장.시장, 기업인과 학자를 만나 중국의 고민과 그 극복 방안을 탐문해 본다. 鄭교수는 지난 9월부터 한 학기 일정으로 베이징(北京)대학에서 한국경제론을 강의 중이다.

▶정덕구 교수=보시라이(薄熙來)성장께선 10년 가까이 다롄(大連) 시장으로 재직하며 다롄을 서구형 국제 도시로 성장시켰다. 랴오닝성은 어떻게 변화시킬 계획인가.

▶보시라이 랴오닝 성장=중국의 문제는 농업의 문제라지만 랴오닝성의 문제는 도시의 문제, 공업의 문제다. 도시화율이 높은 공업지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환경을 정비,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양호한 조건 만들기에 전력하고 있다.

▶鄭교수=그러려면 재원이 필요할 텐데.

▶薄성장=토지 사용료 수입이 주요 재원이다. 선양(瀋陽)의 도시 환경과 기능을 개선한 결과 1년 토지 사용료 수입이 과거의 10배로 늘었다. '도시 환경 개선→도시 기능 제고→도시 가치 상승→외자 유치 용이→국유기업 개혁→도시 발전'이란 선순환을 노리고 있다.

▶鄭교수=인도의 경우 도시 환경이 황폐화돼 콜카타의 빈곤을 낳은 것과 비교할 때 도시 환경을 개선, 외자 유치를 용이하게 하자는 전략은 좋은 아이디어다. 중공업 기지인 랴오닝성의 고민은 국유기업 개혁일 것이다.

▶薄성장=국유기업에는 사람 많고 불량 자산 많고 시스템 또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특히 50년 가까운 계획경제로 자리잡은 낡은 사고를 짧은 시일 내에 바꾸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鄭교수=생존 가능한 기업을 중심으로 과감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薄성장=사람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다. 지난 2년간 3백만명이 정년 퇴직했고 2백만명이 해고됐으며 1백50만명이 정리 휴직됐다. 이 숫자 모두 이 부문에선 중국 최고다. 앞으로 매년 7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鄭교수=그렇다고 국유기업 개혁 행보를 늦추면 뒷날 부담이 더 커져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한국은 1980년대 말까지 빠른 성장을 구가했다. 민간 기업이 발전의 축을 이뤘지만 정부 지원하의 성장이었다. 즉 비닐하우스 속의 채소였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 생존 가능성 있는 기업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과감히 포기했다. 그 결과 한국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중화학 공업을 빼놓을 수는 없다. 랴오닝성도 중화학 공업 비중이 크지만 상당히 노후돼 정리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 중화학 공업은 또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중화학 공업에서 탈피,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킬 계획은 없나.

▶薄성장='장점은 발휘하고 단점은 보완한다(揚長補短)'는 말이 있다. 랴오닝성은 현재 설비와 인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화학 공업을 설비 확대와 인재 확충을 통해 계속 발전시킬 계획이다. 물론 전자.정보통신과 같은 새 산업도 병행 발전시킬 것이다. 이젠 민영 기업이나 외자 기업도 중화학 공업을 할 수 있다. 랴오닝성의 향후 10년간 정책의 중점은 바로 이 같은 민영.외자 기업 육성에 두어질 것이다.

▶鄭교수=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지난 8월 창춘(長春)에서 동북3성의 재개발을 주창했다. 중앙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있나. 행여 동북재개발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닌가.

▶薄성장=동북3성 진흥은 현재 서부대개발과 같은 비중으로 중시된다. 중앙 정부의 지원엔 정책적 지원이 많다.

▶鄭교수=한국은 동북3성, 특히 랴오닝성과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동북재개발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와 역할이 궁금하다. 철강.기계.조선.석유화학과 정보통신 산업 등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부문이 적지 않을 것이다.

▶薄성장=한국 중화학 공업의 발전 경험은 랴오닝성을 포함한 동북3성의 재개발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현재 랴오닝성에 투자한 한국 기업 수는 이미 6천개를 넘었고 실제 투자액도 20억달러에 달한다. 무역도 활발한데 문제는 한국에서의 수입 물량이 수출보다 많다는 것이다(웃음). 지난해 한국으로 12억6천만달러어치 수출하고 15억8천만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올해는 수입이 지난해보다 37% 더 늘 전망이다.

▶鄭교수=특히 중화학 공업 재개발 과정에서 한국의 선진 설비를 계속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薄성장=내년엔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은 선진 설비를 구입할 것이다. 중앙 정부의 동북재개발 지원 정책에 따라 해외 선진 설비 도입과 외국 기업과의 합작 등에서 많은 우대를 받게 됐다. 서둘러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가운 소식이 있으면 친구(한국)에게 먼저 알리는 게 예의 아닌가(웃음).

▶鄭교수=외환위기를 수습하면서 그동안 서구 자본과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을 제고할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다. 향후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 개혁에 나서면 동북3성, 특히 랴오닝성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 자명하다. 북한과 랴오닝성, 신의주와 단둥(丹東)은 과연 경쟁 관계인가 아니면 보완적 관계인가.

▶薄성장=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강렬한 바람 하나는 '한반도에 전쟁이 터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강을 사이에 둔 단둥과 신의주가 공동 발전하기를 고대한다.

▶鄭교수=북한 개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라 보인다. 랴오닝성의 파트너로 한국과 일본 중 어디가 더 적합한가.

▶薄성장=상대가 누구든 랴오닝성과의 협력을 환영한다. 패기만만한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은 무한하다.

▶鄭교수=최근 한.중.일을 포괄하는 부가가치 고리의 형성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든다면 철강도 필요하고 엔진.통신장비도 달아야 하고 페인트칠도 해야 한다. 이 같은 작업을 동북아 3국이 각자 능력에 맞게 나눠 한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薄성장=산업 발전 단계에 맞는 국제 분업이 이뤄지면 좋다. 중.한.일 3국은 경제 발전에 따라 경제 협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鄭교수=薄성장께선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랴오닝성의 국유기업을 보석으로 다듬어내기 바란다.

대담=정덕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산자부 장관)
정리=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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