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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없이 … 제2 인생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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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중공업 정년퇴직자들로 구성된 신화공업 김창원 사장(左) 등 임직원들이 21일 울산 온산공단 내 작업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울산=송봉근 기자

"고령화시대 노인 실업 문제의 해답을 보여주겠습니다."

21일 오후 울산시 온산공단에 있는 신화공업㈜. 선박회사에 철판 등 부품을 조립.가공해 납품하는 회사다. 2000여 평의 노천 작업장은 육중한 철구조물을 나르는 크레인, 용접 불꽃, 쇠 자르는 소리로 요란하다. 안전모.워커.용접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한 채 두께 수십㎝짜리 철판을 찰흙 주무르듯 하는 이 회사 근로자들은 모두 정년 퇴직자들이다.

김창원(70) 사장은 "직원 66명의 평균 연령이 65세(60~71세)"라며 "근력은 좀 달리지만 현역시절 갈고 닦은 기술로 거뜬히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의 창업 이념은 '건강.의욕이 따라 주는 한 직장생활을 계속하도록 해야 한다'이다. 사규에도 정년 규정을 아예 없앴다. 1994년 현대중공업에서 정년 퇴직한 김 사장은 "산업화 시대의 일꾼으로 활약하면서 쌓았던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않고 계속 활용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년 없는 제2의 인생=김 사장은 30여 년간 일했던 현대중공업에서 정년 퇴직한 뒤 다른 퇴직 동료들처럼 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 하지만 현역시절 선박용 철판 조립 분야의 '장인'으로 통했던 그의 기술도 '정년 퇴직자=흘러간 퇴물'이란 사회 인식 앞에 맥을 못 췄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기업의 베테랑 기술자 출신인데 퇴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했어요."

김 사장은 "숫자에 불과한 나이 때문에 작업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을 만들자"며 정년퇴직 7년 만인 2001년, 옛 직장 동료 12명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인 신한기계에 부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다. 부지.설비.재료 일체를 신한기계가 공급해 주고 작업량과 난이도에 따라 노임을 받는 방식이어서 큰 자본금 없이도 창업이 가능했다.

처음 몇 달간은 신한기계도 노인네끼리 일한다며 일거리 주기를 꺼렸다. 하지만 업계 평균 월 30건 이상이던 작업 오류를 2~3건으로 줄이고 납기를 100% 맞춰주자 창업 6개월 만에 월 1800t이던 수주량이 3600t로 늘어났다. 하루 근무시간은 평일 2시간의 특근을 포함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12시간30분. 주문이 밀리면 토.일요일에도 10시간씩 일한다.

덕분에 지금은 매출액 20억원을 넘어섰고 평직원에서부터 사장까지 1인당 200만~50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월급은 조선업계의 다른 협력업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한기계의 엄재홍 상무는 "30~40년의 경험에서 나온 관록 덕분인지 생산성.품질.납기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해 우리 회사에 보배 같은 협력업체"라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전국명(71)씨는 "창업 멤버로 참여해 7년째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다"며 "2남1녀 자식들이 쉬라고 난리지만 건강이 다할 때까지 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대 최지호(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신화공업 같은 고령자 기업을 사회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keyon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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