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사학법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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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를 잡으려니 전통적 지지층이 흔들리고, 지지층을 지키자니 종교계와 등을 돌려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열린우리당 핵심 관계자)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딜레마'에 빠졌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으로 보인다.

19일 진보적 성격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재개정 운동에 가세한 게 결정타가 됐다. 물론 20일 정통 보수 성향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목회자 30인의 삭발식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진보 진영의 전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란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정교(政敎) 충돌이란 최악의 사태도 우려된다. '개방형 이사제'조항을 지키려다 종교계와 적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서울대 송호근(사회학과) 교수는 이미 지난달 열린우리당 비대위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교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 놓고 집권한 적이 있는가"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은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이다.

그렇다고 쉽게 양보할 처지도 못된다. 개정사학법은 "17대 국회에서 통과시킨, 당의 정체성에 맞는 유일한 법안"이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 "절대 못 고친다"=사학법 처리를 주도한 교육위 소속 유기홍 의원은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방안은 수용할 수 없다"며 "개방형 이사제를 건드리는 재개정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봉주 의원도 "새로 마련한 개정안에 사학 현장의 요구를 모두 반영했다"며 "개방형 이사제는 손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수파들도 속내는 복잡하다. 한 의원은 "종교계의 반발을 등지고 내년 대선을 치를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KNCC 총무 등 개신교 관계자들은 이날 김한길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들은 전날에도 청와대를 찾아 이정호 시민사회수석을 만났다. 이들은 "종교 사학의 경우 소속 종단에서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권한을 부여해 달라"며 '개방형 이사제'의 개정을 거듭 요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진지하게 검토해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 "양보해드려야"=종교계 반발이 예상 수위를 넘어서자 당내에선 '양보'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개방형 이사제'에 찬성했던 임종석 의원은 "목사님들이 삭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가 져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직자들이 목회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려야 한다"고 했다.

당 비대위원인 배기선 의원도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 정치가 순수성을 가진 종교의 건학 이념을 가능하면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당내 실용파로 분류되는 유재건.안영근 의원 등은 "사학법 취지를 살리면서 종교계와 화합할 수 있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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