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핸드볼 국가대표 발탁 남은영|고아 역경이긴 최고 공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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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꿈에 그리던 태극 마크는 가슴에 달게 됐지만 같이 기뻐해 줄 부모님은 이 세상에 계시질 않습니다.』
초당약품 핸드볼선수 남은영(21)의 눈물어린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체육계 안팎에 잔잔한 감동을 뿌리고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다 어렸을 때 부모를 한꺼번에 여읜 참담한 현실을 눈물보다 더 많은 땀으로 극복, 한국 최고의 여자 핸드볼 선수로 성장하여 마침내 국가대표의 영예를 끌어안았다.
실업 3년 생인 남은영은 지난17일 끝난 회장기 실업 핸드볼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초당약품의 3년 연속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하며 최우수 선수 상을 수상, 선발 위의 만장일치로 대표팀에 발탁됐다.
9년 동안 온갖 역경을 딛고 말없이 핸드볼코트에 뿌려 온 땀방울이 영롱한 보석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남은영은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소리 없이 흐느껴야 했다. 누구보다도 기뻐해 줄 부모가 남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남이 부모를 잃은 것은 의정부국교 6년 때인 지난 82년 겨울.
의정부 시장에서 야채노점상을 하던 부모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졸지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남은영은 이웃 친지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 중학진학마저 어렵게 됐으나 핸드볼을 한다는 조건하에 특 기자(학자금 면제)로 의정부여중에 진학했다.
당시 의정부여중에서 핸드볼을 하던 언니 미영(23·현재 회사원) 씨의 스승인 박상철 교사(현 의정부 금오여중 교사)의 따뜻한 배려가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중학교 때는 엄마·아빠 생각에 운동도 제대로 못했어요. 자꾸 눈물만 나고… 그때 박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나갔든지, 아니면 비뚤어졌을지도 몰라요.』
박 교사는 당시 남은영의 생일이나 명절 때엔 잊지 않고 선물을 사주는 등 어린 선수가 상처받지 않도록 자상한 관심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철없이 중학을 마친 남은영은 86년 핸드볼 전국 최강인 의정부여고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인생과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1년 내내 계속되는 합숙, 서승진 코치의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
『몸은 더 할 수 없이 고달팠지만 그래도 운동이 아니면 내가 붙어 있을 데라 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절박한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3년을 지냈습니다.』
지금도 의정부여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서 코치는『마음은 아팠지만 은영이가 나약해지지 않도록 야단도 더 치고 매도 더 들었습니다. 다행히 본인이 일찍 철이 들어 남보다 두 세배 더 노력한 덕분에 최고의 영예인 대표선수도 되고…대견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서 코치는『당시 시합에서이기고 나면 선수학부형들이 몰려와 자녀들을 둘러싸고 격려할 때 은영이는 화장실로 달려가 목놓아 울던 모습이 너무나 측은했습니다』고 회고했다.
「울보」남은영은 89년 초당약품에 입단, 고병훈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기량이 꽃피기 시작한다.
포지션이 이너에서 오른쪽 사이드공격수로 전환,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드리블과 속공능력이 두드러져 한국최고의 사이드공격수로 정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현재 남은영의 의정부시 신곡동 집에는 늙은 조부모와 언니, 그리고 군 입대를 앞둔 한 살 아래의 남동생이 옛날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남은영의 월급은 보너스 빼고 월 37만원선. 이 돈을 아직도 부엌일을 하시는 할머니께 꼬박 보내드리는 것이 큰 기쁨이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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