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의 “도박” 일단 성공/소 국민투표와 고르바초프의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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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지지 확보로 입지 강화/민족문제·경제난 해결 관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내놓은 「동등한 주권공화국들의 새로운 연방안」은 소련국민투표에서 힘겹게 찬성을 얻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소련 최초의 이번 국민투표 초기집계결과 소련국민들은 그의 국민투표안에 대해 찬성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모스크바와 다른 대도시 유권자들은 새 연방조약으로 모스크바당국과 소련 15개 공화국들간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계획에 미온적인 지지를 보냈다.
더구나 최대규모의 러시아공화국 주민들은 고르바초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옐친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이 제안한 러시아공대통령 직선제구상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번 투표결과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정치적 대결국면에서 볼때 두사람 모두의 승리로 각기 해석될 수 있게 됐다.
19일까지 나타난 투표의 중간집계 결과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투표거부를 선언한 발트해 3국등 6개 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공화국의 투표율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연방유지 여부외에 몇몇 공화국들이 독자적으로 국민투표안에 포함시킨 찬반 질문에 대한 지지율이 연방안에 대한 것보다 높다는 점이다.
셋째는 중간집계 결과가 투표이전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중간집계를 분석해보면 연방존속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라는 도박을 선택한 고르바초프의 판단은 일단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오는 25일께 소련전역의 집계가 완료되면 승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제안한 정책에 대한 전체 국민의 지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다는 지금까지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옐친등 개혁파들의 입지는 약화되고 민족주의자들은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옐친이 제안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직선의 필요성」을 묻는 조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70%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옐친은 소련 최대 공화국인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련 최대공화국의 직선대통령이라는 명분으로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고르바초프를 공격,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표결과 고르바초프가 비록 대도시에서는 제한적 지지를 확보했지만 전체적으로 70%선에 육박할 지지를 확보하고 옐친이 50∼60%선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그친다면 그의 이러한 계획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이번 투표에서 지역적 이슈에 대한 각 공화국의 독자적 질문에 찬성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각 지방공화국의 지역적 세력들이 이미 확고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민족의식이 특정 공화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연방적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투표를 거부한 6개 공화국의 처리문제와 연관해 소련 정치의 최대 난제가 역시 민족문제임을 다시한번 입증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민투표는 소련 사회의 근저에 깔려 있는 민족주의적 긴장을 전혀 해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옐친은 발트해 3국등 투표거부 6개공화국의 상황,독립에 83%의 찬성을 던진 우크라이나 르보프시의 상황등을 들어 연방존속에 관한 국민투표가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고르바초프를 공격하면서 지역민족주의 세력과 제휴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발트해 3국등 6개 공화국에서 투표에 참가,찬성투표를 던진 소수민족의 목소리와 의견결집을 강조하면서 소수민족의 권리도 보장할 수 있는 신연방조약의 체결만이 연방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투표결과를 강요하려는 연방유지파와의 갈등과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이번 투표를 완전한 승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민족문제와 경제난해결이라는 두가지 난제해결에 달려 있으며 이는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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