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과거엔 나더러 의인이라더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친노 직계 그룹의 대선 4주년 기념행사에 나타나 구설에 오른 김대업씨. 4년 전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실형을 살았던 그는 기자에게 “8.15 때 복권을 기대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변선구 기자

19일 오후 7시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친노무현 직계그룹이 주최한 '대선 승리 4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곳이다.

여기에 2002년 대선 당시 이른바 '병풍' 사건의 중심이었던 김대업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퍼뜨려 선거 뒤 명예훼손죄 및 무고죄로 실형을 살았다. 김씨는 캐주얼 바지에 스웨터 차림으로 대선 승리 기념행사에 나왔다. 행사장 뒤에 잠시 머물던 김씨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는 20일 여의도 정가에서 화제가 됐다.

기자는 20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행사가 열리는 줄 몰랐다.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강연회가 있어 구경 간다기에 따라갔더니 행사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내가 그런 행사인 줄 알았다면 갔겠나. 사람들이 괜한 말 만들어 낼 게 뻔한데…"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의 말투에 죄의식이나 주저함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냈다.

"존재할 가치가 없는 당" "그런 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 해도 제대로 된 사람이 나오겠나"는 말들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만히 있는데 한나라당이 계속 날 파렴치범이니, 공작범이니 몰아붙인다면 나는 한나라 당사 앞에서 분신하겠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해 "그분이 인격적으로 훌륭한 걸 알고 있다"며 "병역 부분만 빼면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미안한 감정이 왜 없겠나"고 말했다. 그는 "병역비리 공소시효는 5년이지만 탈영은 시효가 없다. 이는 병역비리는 돈 있는 사람이 저지르지만 탈영은 없는 사람이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이 행사에 참여한 것을 열린우리당 내 신당파 의원들이 비판했다.

"과거엔 나에게 의인이라더니 그때를 벌써 잊은 건가. 만일 그들이 정치를 제대로 했다면 열린우리당이 지금 이런 모습이 됐겠나. 그 사람들은 내가 한나라당 집회에 가길 원하는 건가."

-요즘 어떻게 지내나.

"힘들게 살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아내가 하던 식당을 접은 뒤 가게를 얻으려 해도 소문이 나 계약이 파기되곤 했다. 우리나라는 연좌제가 아닌데 아내와 자식이 고생이다.

(목소리를 높이며)정치인들은 비리를 저질러도 감옥에 갔다 오고 한두 달만 지나면 조용한데 내 문제는 한나라당이 4년째 우려 먹고 있다."

-그럼 생계는 어떻게 꾸리나.

"난 옛날에 나쁜 짓 해서 모아둔 돈이 많다. 숨기고 싶은 거 없다. 과거엔 눈먼 돈 못 먹는 사람이 바보였고, 먹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병풍이 정말 진실인가. 아직도 집권 측의 공작이라 여기는 이가 많다.

"만약 그것이 공작이고 누군가 배후에 있었다면 내가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한나라당은 병풍과 관련해 '청문회를 하자' '국정감사를 하자'면서도 내가 나서겠다고 하면 안 한다."

-억울한가.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이다. 나는 정치권의 논리에 의해 힘이 없어 감옥에 간 거다. 국회의원들이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면 벌받지 않는데 나는 배경도 없고 힘없는 사람이라 감옥에 갔다."

-왜 행사장에서 이기명씨나 명계남씨 등에게 인사하지 않았나.

"그분들과는 원래 모르는 관계다. 내가 행사장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뭐라 하는데 그 사람들과 말이라도 했다면 괜한 오해를 받았을 거다."

-올해 8.15 사면.복권에 포함되지 않아 불만스러워했다는데.

"나는 1998년부터 병역비리 수사를 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과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고 복권을 기대했다. 8.15 대상자 명단 발표를 앞두고 시민단체에서 '대통령에게 청원해 보겠다'고 해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과도하게 요구한 적 없다."

-현 정부 탄생에 공이 컸는데 요즘 정부와 당의 지지율이 매우 낮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대통령과 여당을 욕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모든 잘못을 노 대통령과 여당에만 돌리는 건 잘못이다. 국민도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 "병풍이 정치공작임을 자인"=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이 4년간 집권하면서 국민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도 반성과 참회는커녕 희대의 사기꾼을 행사에 참석시켰다"며 "이는 김씨를 대선의 1등공신으로 인정하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 정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김씨가 제발로 찾아갔든 초청을 받았든 정치공작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행사에 입장시킨 것만 해도 병풍이 정치공작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