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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네커 모스크바 전격 이송/독­소 밀월무드에 “찬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발포명령 범법자”… 독일측 분노/양국 고위층 사전 협의설도
구동독 소련군 병원에 머무르고 있던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국가평의회의장(78)이 신병치료를 이유로 지난 13일 부인 마르고트와 함께 소련측에 의해 모스크바로 전격 이송된 사실이 밝혀져 독일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포겔 독일 정부대변인은 14일밤 이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독일 정부는 13일 호네커가 소련으로 이송되기 직전 이 사실을 소련으로부터 통고받았다고 밝혔다.
포겔 대변인은 『소련 정부의 이같은 처사는 구동독지역에 주둔중인 소련군의 체재 및 철수에 관한 양국간 조약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제법에도 어긋난다』고 밝히고 소련측에 그의 신병을 즉각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15일 외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를 정식으로 거부,이 문제가 양국간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17일 겐셔 외무장관을 소련에 파견,이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지만 이로 인해 그간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독소 관계가 다시 냉각될 소지가 많아진 것으로 이곳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호네커를 소련으로 빼돌린데 대해 독일 국민이나 정부가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이유는 그가 엄연한 범법자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시 법원당국은 지난주 그가 연금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면서 지금까지 동서독 국경을 넘던 동독인 사망자 1백90여명에 대한 발포명령을 그가 내린 사실이 확인돼 그가 올해안으로 기소될 예정이었다고 밝혔었다.
이같은 범인을 소련 정부가 독일측과 사전협의 없이 사실상 「납치」한데 대해 독일국민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호네커를 모스크바에 이송한 시점이 소련 정부가 독일의 통일을 인정하는 이른바 「2+4조약」에 대한 소련의회의 비준을 독일측에 정식 통보,독일이 공식적으로 주권을 회복한 15일에서 이틀전인 13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번 일을 소련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통해 결정했다는 풀이를 가능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호네커라는 인물이 「백주에 소련으로 도망치는 것」을 과연 독일 정부가 몰랐었겠느냐 하는 의심이 독일국민 사이에 퍼지면서 독일과 소련의 고위층 사이에 사전협의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소련,특히 소련의 군부세력은 그간 「호네커동지」를 독일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명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 콜 독일 총리와 사전협의한뒤 실행에 옮겼다는 주장이다.
독일 정부로서도 과거청산이란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호네커에 대한 사법적인 처리를 해야했던 마당에 소련측의 이같은 「협조제의」를 모르는 척 받아들였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지난 76년 당 서기장에 취임,89년 10월 동독 무혈민주화 혁명으로 사임하기까지 13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호네커는 지난해말부터 포츠담 근교 벨리츠의 소련군 병원에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채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는 심장과 순환기 및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부 목격자들은 호네커의 건강이 나쁘다는 것은 그가 안전한 소련군 병원으로 도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그가 정말 병을 앓고 있다면 신장투석기도 없는 소련군 병원보다 의료시설이 잘돼 있는 독일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재 독일과 소련 사이에는 범인인도 협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소련이 호네커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는 한 그에 대한 독일의 사법처리는 불가능한 상태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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